1899년 러시아 포경기지로 근대적 항구로 문을 연 장생포 항은 일제 강점기까지는 노르웨이어, 러시아어, 일본어, 조선어가 혼재하는 그야말로 국제적인 항구였습니다. 해방을 맞아 1946년 조선포경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는부터는 대한민국 포경기지의 중심 역할을 감당하였고요. 1970년대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 할 정도로 부유한 어촌이었던 장생포는 1986년 상업포경이 금지되면서 점점 쇠락해 가더니 2000년대 들어서면 시간이 멈춰버린 어촌으로 남게 됩니다. 

 

 

 

장생포 고래문화마을과 울산대교 모습

2008년 대한민국 유일의 고래문화특구로 지정되면서 조금씩 활기를 찾은 장생포는 고래바다여행선이 출항을 시작하고 도심과 장생포를 번갈아 가며 열리던 고래축제가 이곳으로 완전히 정착을 하고 울산을 상징하는 울산대교까지 개통하면서 울산을 대표하는 여행지로 떠오르게 됩니다. 

 

 

 

옛 장생포 동사무소를 개조하여 2017년 문을 연 장생포고래로131 갤러리

 

70년대 포경 시절 운영하던 여인숙을 개조하여 문화 공간으로 2018년 문을 연 '아트스테이'

장생포에 새로운 공간이 하나둘 들어서는 동안 한편으로는 포경시절의 모습을 간직한 장생포의 근대적 공간들은 하나둘 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최근 8,90년대 문화가 소위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창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장생포만이 간직한 많은 근대 문화유산이 아쉽게도 소리 소문없이 사라진 것입니다. 다만 최근 몇 년 전부터는 이러한 공간의 중요성을 인식한 울산시와 남구가 장생포의 몇몇 공간들을 보존하고 탈바꿈시켜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시민들에게 선보이기 시작했으니 늦었지만 다행입니다. 

 

 

 

해양 쓰레기를 재활용한 설치 미술전 모습 -장생포만의 특징을 살린 전시가 많이 열리는 장생포고래로131 갤러리

이 중에서도 가장 먼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해 문을 연 장생포고래로 131 갤러리(이하 '131 갤러리'로 표기)는 울산에서 조금 이색적인 갤러리입니다. 옛 장생포 동사무소를 개조하여 2017년 문을 연 131 갤러리는 이곳과 아트스테이에서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펼치는 이른바 '입주작가'(레지던스 작가)들의 작품을 위주로 전시하는 공간입니다. 즉, 전국 여러 곳에서 모인 다양한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장생포(와 연관된)의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어 울산 시민의 시선으로는 바라보기 힘든 새로운 장생포의 모습을 보여 주기에 개인적으로 늘 주목하는 갤러리입니다.

 

 

 

김현우의 처용탈전(02.12-02.21)

2월 중순 131 갤러리에는 그동안의 전시내용과는 조금 결이 다른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금껏 전시작품이 타 지역에서 온 2,30대 젊은 작가의 것이 주를 이뤘다면 이번 전시는  34년 간 울산에서, 지극히 울산적인 '처용'탈을 만들어 온 김현우 명인의 처용탈전으로 꾸민 것입니다.  울산에서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단체나 개인을 지원하는 행사로 준비한 이번 전시는 울산 시민의 문화 향유 및 지역 문화 공동체 형성을 꾀하고자 마련했습니다.  

 

 

 

전시 개막에 앞서 인사말을 하는 김현우 명인

경북 영주 출신의 김현우 명인은 울산의 목재소에서 일하는 도중,  1987년에 우연히 김춘수 시인의 '처용단장'이라는 시를 접하고는 처용의 얼굴이 궁금해졌다고 합니다. 마침 처용 설화의 발원지가 울산이다 보니 더욱 의미있게 다가온 것입니다. 이후 처용탈을 쓰고 하는 '처용무' 공연에서 만난 처용탈의 모습이 본인이 생각하던 - 역신을 너그럽게 용서한 인자한 처용'- 모습과는 다른 '무서운' 처용의 모습에 의아함이 생기자 직접 처용탈 제작에 나서게 됩니다. 

 

 

 

울산 남구 황성동에 위치한 '처용암'

 

악학궤범에 나온 처용의 얼굴

 

악학궤범을 바탕으로 만든 처용탈

조성 성종 24년(1493년) 때 편찬한 '악학궤범'과 조선시대 '의궤도'를 보면 처용 얼굴 그림과 처용탈을 쓰고 처용무를 추는 그림이 여러 점 있는데요. 김현우 명인은 '악학궤범'에 나온 처용 얼굴을 눈여겨 봅니다.  시대적으로 조선 초기라는 점, 전체적인 얼굴 모습도 관용을 담은 얼굴 표정이 사실적으로 그려졌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지요. 

 

 

 

처용탈전 개막식 모습

김현우 명인에 따르면 눈이 크고 너그러운 처용의 모습이 언제부터인가 눈이 찢어진 사나운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말까지 계속적으로 만들던 처용탈은 1900년부터 1930년까지 제작이 중단되었고 처용무 또한 추지 못하게 되다가 1930년 순종 탄신 50주년을 기념하여 겨우 다시 만들어지나 아쉽게도 왜색이 짙은 모습이었다 합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왜색이 더해지면서 처용의 모습이 왜곡됐으리라 짐작 가능한 대목입니다.  

 

 

 

원초처용면 탈

삼국유사에 따르면 처용은 동해 용왕의 일곱 아들 중 하나입니다. 즉 처용은 처음에는 용의 모습을 하다가 이후 사람과 어울려 살면서 유덕한 처용아비의 모습으로 바뀌게 된 것이죠. 이렇듯 처음 처용의 모습을 '원초처용면'이라 부르는 데요. 조선시대 엽전에 그 모습이 남아 있어서 이를 바탕으로 제작한 탈이 '원초처용면(元初處容面)'탈입니다. 이번 전시회는 이런 다채로운 처용탈뿐만 아니라 울산을 대표하는 여러 가지가 목조각과 탈로 선보이고 있으니 궁금한 분들이라면 전시회에서 직접 확인하면 좋겠습니다.  

 

처용이라는 화두로 인생의 절반을 보낸 나날. 뒤돌아 보면 보람도 있었지만 어찌 고비가 없었겠습니까만은 신라시대에 시작되어 1200년의 역사를 지켜 온 처용을 가지고 울산에서 처용탈을 깎게 된 것도 행운이라고 명인은 말합니다. 1995년 '처용탈전'을 시작으로 어느덧 73번째 전시회가 131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처용에 대한 얘기는 무수히 풍문으로 들었으나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 보지 못한 이라면 살짝 시간내어 발걸음 해도 좋겠습니다. 

 

김현우의 처용탈전

 - 2020.02.12(수)~02.21(금)

 - 장생포고래로131 갤러리

 - 문의전화 052.709.3033

 

 

 

 

 

 

Posted by 가족풍경수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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