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 국가정원 안내센터 뒤편에 오산광장이 있고 뒤에 작은 언덕이 있습니다. 강변을 따라오거나 십리대숲으로 오셨다면 은하수 길이 끝나는 지점에 정자가 하나 있습니다. 그 정자가 만회정입니다. 만회정은 울산의 임진왜란 의병장인 박홍춘의 손자 만회당 박취문이 1660년경에 지은 정자입니다. 다르게는 관어정이라고도 불러졌습니다.

 

 

만회정이 있는 내오산은 산이라기보다 작은 언덕입니다. 내(안內), 오(자라鰲), 산(뫼山)으로 자라 머리 모양의 언덕으로 외 오산은 옛 삼산을 가리킵니다. 만회라는 말은 만(늦을晩), 회(뉘우칠悔)이니 때늦은 후회를 말합니다. 옛 선비들의 호 중에도 많고 전국의 정자들 중에도 같은 이름이 많습니다.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함이 만회정 이름 속에 담겨 있습니다.

 

 

박취문은 누구일까요? 박취문(朴就文)[1617(광해군 9)~169(숙종 16]은 울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자헌대부 지중 추부사(資憲大夫知中樞府事) 박계숙(朴繼叔)이며, 어머니는 경주 김 씨입니다. 1644년(인조 22) 무과 별시에 급제한 후 함경도로 파견되어 약 1년간 군관(軍官)으로 복무하였습니다. 이후 선전관과 경상 좌병영의 우후와 경상좌수영의 우후를 지냈으며, 인동과 갑산 등 여섯 고을의 수령, 진주와 경주 등 다섯 고을의 영장을 역임한 후 울산으로 낙향하였습니다.

 

 

박취문이 낙향한 시점인 1682~1690년에 내오산에 만회정을 건립하였습니다. 조선 영조 25년에 만들어진 울산 최초 읍지인 『학성지(鶴城誌)』[1749]에 "내오산은 태화진의 서쪽 수리(數里)쯤에 있다. 작은 언덕이 강에 닿아 있고 경치가 그윽하며 묘하다. 만회정이 있는데 부사 박취문이 지은 것이다. 정자의 앞에는 가늘고 긴 대숲이 몇 무(畝)가 있고 아래에는 낚시터가 있으며 관어대(觀魚臺)라는 세 자를 새겨 놓았다”라고 만회정의 조성 연혁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후 문헌 기록에 남아 있지 않는 시기를 감안하면 1786~1832년 무렵에 소실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만회정 대들보에는 많은 묵객들의 시판이 걸려 있었지만 1850년쯤에 정자가 소실되면서 모두 사라졌습니다. 정자 중앙에 걸린 ‘만회정(晩悔亭)’이라는 현판 글씨는 박취문은 그의 일기와 아버지 박계숙의 일기를 묶은 『부북일기(赴北日記)』에서 집자하여 만들었다고 합니다.

 

 

『부북일기』는 아버지 박계숙은 1605년(선조 38), 박취문은 1644년 함경도에 파견되어 약 1년간 군관으로 복무하였는데, 그에 대한 일상생활을 자세히 기록하였습니다. 조선시대 무관(武官)이 남긴 것이라는 점에서 희소가치가 큽니다. 아버지와 아들 양대에 걸친 일기로, 근무지까지 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상적인 사건들까지 자세하게 써 놓은 일기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7세기 변방 지역의 군사 업무 실상과 군관들의 생활상을 살펴보는 데 도움을 주며, 경상도 울산에서 함경도 회령에 이르는 노정이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도로 교통의 실태도 알 수 있습니다.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울산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만회정이 과거 태화강 십리대숲과 주변 경관을 감상하였던 곳임을 회상하여 2011년 12월 9일 태화강변에 복원하였습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중당 협실형 팔작지붕으로 고증하였습니다. 전면에 툇마루를 설치하였으며 복원하면서 관리의 편의성 때문에 통간으로 시공하였습니다. 계자 난간이 전면부에 돌려져 있습니다.

 

 

관어대는 만회정 아래쪽, 오산의 남쪽 아래 물속에서 솟아있는 바위면에 세로형 한자로 '관어대(觀漁臺)'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퇴적 변성암으로 암괴 높이는 88cm로 조성시기는 1,700년대 초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자라 그림은 관어대 서쪽 5m로 퇴적 변성암에 한 점이 새겨져 있습니다. 바닥부터 머리끝까지 높이 55cm, 입에서 꼬리까지 69cm로 조성 시기는 연대 미상입니다.

 

 

내오산 학 암각화는 1700년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본래 이곳으로부터 북쪽으로 약 50cm 떨어진 명정천의 동쪽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하천정비공사 시 소실되었습니다. 당시 학 암각화의 크기는 높이 110cm, 너비 67cm 정도였으며, 학천(鶴天)이라는 글씨도 함께 새겨져 있었다고 전합니다. 학 암각화가 위치하였던 곳은 최근 데크의 조성으로 접근이 용이하지 않아 이곳에 새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으세요?

 

 

철새 홍보관 1층 라운지 벽면에도 있습니다.

서장성이 남긴 시문도 내오산 서쪽 언덕 바위에 새겨져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하나 찾지 못했습니다. 현재 발견된 흔적이 없습니다. 박취문이 소유였다가 서장성으로 넘어갔다고 서장성은 관어정 위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합니다.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서장성의 집은 태화강에 휩쓸려 사라지게 됐으며 후손들이 그 자리에 묘를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위쪽 정상부에 있는 개인 분묘 2기가 있습니다. 이곳은 찾은 외지 관광객들과 시민들은 국가정원에 묘지가 있는 것이 의아하게 생각될 수 있습니다. 이 오산은 현재까지 달성서씨 문중 소유지입니다. 현재 지주의 동의를 얻어 데크 산책로만 설치되어 있습니다.

 

 

태화강변을 바라다보는 관광 명소로 많은 시민들과 외지 관광객들이 찾고 있습니다. 만회정은 태화강변 경관 휴식처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역사문화 체험교육의 중심장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태화강 국가정원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훌륭한 자원이 되고 있습니다. 하부에 인도교가 달린 오산대교가 멀지 않아 개통되면 과거와 미래가 있는 역사의 도시 울산이 더욱 빛날 것입니다.

 

 

 

찾아오시는 길

울산시 중구 태화동 664번지 태화강 국가정원 안내센터 뒤편, 오산대교 옆

 

Posted by 여행보내주는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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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blog.ulsan.go.kr BlogIcon 명품서진 2020.01.04 2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화강국가정원에 역사 유적 이 있군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대박나세요

  2. 솜털숑숑 2020.01.06 2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 좋은 정보를 접하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

  3. 제주관광객 2020.01.07 1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울산에 이런 문화유산이 있다니 신기하네요!

  4. 황령산호랑이 2020.01.07 2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울산에도 예쁜 정원이 있군요!

  5. Favicon of https://www.walkview.co.kr BlogIcon 워크뷰 2020.01.08 00: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이런곳이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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