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 최제우 유허지’는 조선 후기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1824~1864) 선생이 수도생활을 하다 천서를 받고 도를 깨우친 장소입니다. 이곳은 최제우 선생의 부인의 고향으로 이곳에 초가집을 짓고 수련을 계속하던 중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동학을 창시하는 중요한 전기가 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울산시 기념물 제12호인 ‘수운 최제우 유허지’로 지정된 후 유허비와 비각이 건립되고 초가와 초당이 복원되었습니다. 동학의 의미를 되새기는 장소와 더불어 최제우 유허지 생활공원이 조성되면서 지역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녹색여가공원으로 휴식과 명상 공간으로 마련되었습니다.

 

 

조선 철종 때인 1860년에 최제우 선생이 창시한 동학은 서양의 학문이나 종교를 뜻하는 서학에 반대하며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동학의 의미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人乃天) 사람 섬기기를 하늘 섬기듯 하라."라는 가르침입니다. 양반과 상민을 차별하지 않고 노비제도를 없애고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는 평등한 사상을 추구하였습니다.

 

이에 동학사상은 농민들의 마음을 크게 파고듭니다. 신분제가 크게 동요하던 당시의 상황에서 탐관오리와 어지러운 정세로 괴로움에 시달리는 민들은 모두 평등하다는 동학의 사상이 민중들의 마음에 크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동학은 어지러운 정치와 타락한 사회를 바로잡고 어렵게 살고 있는 민중들의 생활을 구제하려는 반봉건 운동과 동시에 서양 세력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위한 반외세 운동의 성격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탐관오리와 외세에 맞서 사회 개혁 운동을 벌였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민족 운동에도 참여하게 됩니다.

 

 

최제우 선생은 이곳 초당에서 본격적인 구도(求道)를 시작하여 천서를 받는 계기의 장소입니다.  내부에는  선생의 초상화가 걸려있습니다. 최제우 선생은 이곳에서 하루 세 번 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수운 최우제 선생의 유허지입니다. 선생의 일생을 간략하게 안내하고 있습니다.

 

 

초당과 유허지를 둘러본 후 언덕 아래 계단으로 내려가면 생활공원이 위치해 있습니다. 조용하고 아담한 공원으로 명상과 사색하기 좋은 장소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최제우 선생은 1864년 41세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공원 내에 ‘최제우 나무’가 있습니다. 동학을 널리 폈던 수운 최제우 선생이 유교의 가르침을 어지럽혀 백성들은 현혹시킨다는 ‘좌도 난정’의 죄목으로 경상감영 감옥에서 참형됩니다. 효수형 명령이 떨어지자 수운 선생을 지켜보던 회화나무 잎사귀에서 수액이 우수수 떨어져 내려 그 회화나무를 ‘최제우 나무’라고 불렀다고 하는 일화가 안내되어 있습니다.

 

 

수은 최제우를 유허지를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동학관 건립 공사안내판을 보았습니다.  추후 동학관이 건립되어 사람을 존중하고 평등사상을 추구한 수은 최제우 선생의 동학 정신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래봅니다.

 

 

 

 

 

 

Posted by 바다고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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