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9월 28일, 벨기에의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외젠 이자이의 결혼식에서 연주된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새로운 출발점이었습니다. 이자이에게는 장밋빛 미래를 밝혀주는 우정의 선물이었으며, 프랑크는 이 작품을 통해서 비로소 작곡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실제로 이 음악음 그가 죽기 몇 달 전에 선보인 현악 사중주를 제외한다면, 프랑크 생전에 유일하게 성공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바이올린 소나타의 성공은 그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죠.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세자르 프랑크는 바이올린 소나타의 작곡가로 기억되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생명의 양식 Panis Angelicus]과 같은 작품들도 있지만 무엇보다 프랑크 음악의 정점은 바로 이 A장조의 바이올린 소나타입니다.



 이 작품에 대한 드뷔시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사람들은 프랑크의 천재성에 대해 떠들어대곤 하지만, 정작 순수한 의미의 심플함이라는 것을 지적한 사람은 없다."
 사실 프랑크는 매우 단순한 사람이며, 대단한 낙천주의자였습니다. 그의 제자였던 배앙 댕디는 "프랑크는 아름다운 화음 하나를 작곡한 것만으로도 하루종일 기분이 좋아서 콧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다"라는 증언을 남겼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단순해 보이기도하지만 그 안에는 엄격한 논리 구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19세기 리스트와 바그너에서 시작된 새로운 종류의 음악이며, 프랑크는 전통과 혁신 사이의 '통로'를 발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곡의 발전부와 제시부가 통일적으로 묶여 있기 보다 독립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이 새로운 음악적 '통로'에 관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요컨대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접근하면서 멀어지며, 다가오면서 이탈하는 우주의 조화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프랑크는 평생을 오르가니스트로 살아 왔으며, 동시대의 사람들에게도 그는 하모니움(소형 오르간의 일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풍금')선생으로 유명했습니다. 프랑크는 오르간으로 사고한 인간이었으며 그의 작곡 기법에서도 오르간 스타일은 작품의 가장 밑바탕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가 이 바이올린 소나타에서 순환 기법(구조적인 통일을 위해 앞선 악장의 동기, 주제 등을 뒤 악장에 반복하는 작곡 형식)을 쓴 이유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오르간을 연주한 경험에서부터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대위법적인 요소가 쓰인 것도 오르가니스트로서 바흐의 오르간 작품을 연주했던 기억으로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작곡 스타일은 그의 D단조 교향곡에서도 드러나는데 생명의 탄생과 소멸 그리고 다시 생성의 단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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