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아는 사실이겠지만, 차이콥스키는 부인이 아닌 음악적 후원자였던 9살 연상의 폰매크라는 돈많은 미망인이 있었습니다. 그가 음악가로서 성공하기 전부터 오래동안 금전적, 심리적 지지대 역할을 했던 여인인데요.
 
차이콥스키는 러시아에서 유명한 음악가가 된 이후에도 이 한 여인에게 의지를 굉장히 많이 했는데요. 
차이콥스키의 평생의 주춧돌이 되어준 그녀가 1890년 갑자기 소식이 끊기게 됩니다. 평생 우울증을 앓아왔던 차이콥스키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수가 없었죠.

그 상황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그의 마지막 교향곡 6번 "비창" 입니다.


 국제적 명성이 있는 작곡가로 성공한 차이콥스키는 더 이상 부인의 후원금이 필요하진 않았지만, 그에게는 부인이 주는 정신적 지원은 대체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습니다. 편지가 끊겨 큰 절망에 빠졌지만, 다시 작곡에 매진하게 되는데 그 마지막 작품의 교향곡 6번입니다. 초연은 1893년 10월 28일 페트르부르크에서 자신의 지휘로 이루어지는데 특이한 곡 형식과 절망적인 느낌으로 인해 평판이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초연 다음 날 차이콥스키는 작품이 청중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고 작품에 표제를 넣을까 말까 고민하게 됩니다. 그때 동생이 비창(Pathéthique)이라는 이름을 제안하여 즉석에서 악보에 써 넣었다고 합니다.

 그 때부터 이 교향곡이 "비창"이 되었고 이 곡을 초연한 후 차이콥스키는 9일 후에 갑작스레 죽게 됩니다.

 그의 죽음의 원인은 전기에 의하면 콜레라라고 쓰여져 있는데요. 죽기 며칠 전에 끓이지 않은 물을 먹고 콜레라에 전염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러시아는 콜레라가 만연되어 있어 그가 아주 위험한 행동을 한 것이죠. 그러나 당시에도 차이콥스키의 자살설이 파다했고 20세기 연구가들도 그가 자살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동성애의 추문을 피하고자 누군가가 그를 독살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고 그가 죽기 직전까지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으니, 병사가 맞다고 하는 이들도 여전히 있습니다.

 이제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그는 그렇게 비극적으로 떠났습니다. 죽음에 앞서 폰 매크 부인의 이름을 여러 차례 불렀다고 합니다. 그렇게 차이콥스키가 죽고 나서 "비창"이 다시 연주되었을때, 이제는 관객들도 그의 뜻을 알았는지, 그의 죽음에 감명되었는지 연주회장이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제4악장 [Adagio Iamentoso b단조 3/4박자]
차이콥스키 마지막 탄식의 노래이며 애가입니다. "비창"의 이름에 잘 맞는 비통한 정서를 띤 악장으로 교향곡의 종악장으로서는 드문 편입니다.
 
울부짖는 아다지오 주제는 현의 강주로 시작되는데, 제1주제는 비통한 인상을 주면서 반복되고 이윽고 투티의 포르티시모로 고조된 뒤 피아니시모로 떨어집니다. 이 부분이 반복되고 음계적으로 하강하는 파곳의 독주를 거쳐 애절하기 이를 데 없는 안단테의 제2주제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현으로 연주되는 제2주제는 큰 아치를 그리며 반복되고 화성의 두께를 나타내어 흐느끼면서 정점을 구축, 또다시 절망적으로 하강하며 사라집니다. 


 제1주제가 액센트를 강화해서 재현된 후 강렬하게 고뇌하듯이 발전하고 고조된 뒤 사라지면 탐탐(징)이 공허하게 울리고 금관이 절망적인 소리를 내며 코다로 들어갑니다. 여기에서 제2주제가 비통하게 울리고 피치카토의 여운을 남기며 쓸쓸하게 사라집니다.


작곡자의 갑작스런 최후를 암시하는 듯 비통하고 우울한 수수께끼 같은 악장입니다.

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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