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문화유적을 찾아 떠나보는 길은 늘 즐겁습니다. 울산에는 보물 문화재도 중요하지만 지방의 유형문화재들이 많습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지역의 문화재들을 알아가고 찾아가는 것도 주말과 휴일을 보내기에 또 다른 한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더운 날씨가 시작되었지만 지역을 알아가면서 울산에도 이런 좋은 데가 있나 싶을 정도로 추천할 장소들이 생긴다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벌써 일 년의 절반인 6월도 다 지나가고 7월이 시작되었네요.

 

울산의 유적 찾기도 매번 장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여 이번에는 동구와 북구 두 곳의 유적을 둘러봅니다. 

 

 

울산 동구와 북구의 문화재 가운데 주변의 경관과 역사적 유적들이 있는 동축사와 어물동 마애삼존불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울산 동부 동부동에 있는 동축사는 가는 길에 약수터와 알바위 등 주변에 볼거리도 많고 입구에서 800m 정도 가면 다소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천년고찰인 동축사가 있습니다.

 

 

동축사에는 회화나무가 있는데 나무 나이가 약 250년 정도 추정되며 높이가 10m가 넘고 나무둘레는 2.7m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 회화나무는 콩과의 낙엽교목으로 정원수이자 정자나무로 사용됩니다. 예로부터 일찍이 회화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큰 인물이 나오고 부자가 된다고 전해져 길상 목으로 많이 심었습니다.

 

 

동축사(東竺寺)의 창건과 관련해서는 삼국유사(三國遺事) 황룡사 장육 상조(皇龍寺丈六像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잘 기록되어 전합니다.

 

진흥왕 30년(569) 황룡사를 완성하고 얼마 후 바다 남쪽에서 큰 배가 와서 하곡현(河曲縣)의 사포(沙浦: 지금의 울주 곡포(谷浦))에 닿았다. 이 배를 검사해 보니 공문(公文)이 있었는데 쓰기를, "서축(西竺)의 아육왕은 황철 5만 7천 근과 황금 3만 분을 모아 장차 석가 삼존상을 주조하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배에 실어 바다에 띄우면서, 인연이 있는 국토에 도착하여 장육존상(丈六尊像)이 이루어지기를 축원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또한 부처 하나와 보살상 둘의 모형도 함께 실려 있었다. 현(縣)의 관리가 문서를 갖추어 임금님께 보고하니, 왕은 사자를 시켜 그 현의 깨끗한 땅을 가려 동축사(東竺寺)를 창건하고 세 불상을 편안히 모시도록 했다. 기록으로 보아 동축사는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축사에는 문화재로 삼층석탑이 있는데 절의 대웅보전 앞마당에 있습니다.

 

 

원래 이 탑은 약간 떨어진 위치에 있다가 2005년에 다시 원래 자리로 부재를 일부 보충하고 복원하여 자리를 되찾았습니다. 통일신라시대 석탑 양식을 따라 만든 이 탑은 안내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동축사 삼층석탑은 신라의 전통양식인 중층 기단 삼층석탑이다. 화강암으로 된 이 석탑의 기단은 면석이 모두 없어져 원래의 정확한 높이를 알 수 없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모두 한 개의 돌로 되어 있으며, 멈돌에는 네 귀퉁이에 기둥을 본떠 새겼는데, 지붕돌의 받침은 1,2층은 5단이나 3층은 3단으로 되어 있다.

 

상륜부는 노반과 보개만 얹혀 있는데, 돌의 재질이 탑신부와 다른 사암 계통이어서 이 석탑을 여러 차례에 걸쳐 고쳤음을 알 수 있다.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문안 내용 중에 멈돌이 뭔가 한참을 보니 몸돌을 잘못 표기하여 놓았네요. 빠른 시기에 멈돌은 몸돌로 수정을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주 건물인 대웅보전의 본존불은 석가여래좌상은 돌로 만든 불상으로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범종루에는 나무 모양 물고기인 목어와 범종 북인 법고가 있습니다. 잔디도 깔려 있고 사찰이 크지 않아 아득한 느낌이 있습니다. 주변에는 경치가 좋은 바위들도 있는데 시간상 다 보지 못하고 왔습니다.

 

 

 

울산광역시 북구 어물동에는 울산 어물동 마애여래좌상이 있는데 통일신라의 마애불로 추정되며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도로변에 안내 간판과 문화재를 알리는 이정표가 잘 되어 있습니다. 울산 강동 사랑길 7구간 B코스의 구간이며 마애사라는 곳이 있으며 오르는 길이 약간 가파른 곳에 위치해 올라가는 길은 멀리서 보면 먼 거리 느낌이 듭니다.

 

 

마애불로 가는 길에 청동기시대로 추정되는 암각화도 보이고 예로부터 소원을 빌고 빌었던 간 돌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곳을 찾아 돌을 갈아서 소원을 빌은 곳으로 보이며 현재도 소원을 빌고 있습니다. 흔히 돌할매라고도 알려진 곳입니다. 주변 바위에는 불족적이라는 곳도 있습니다.

 

 

마애불은 돌벽에 새긴 부처를 말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서산이나 태안지역에서 보이듯 삼국시대부터 이미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물동 마애불은 "방 바위"라 불리는 거대한 바위벽에 약사불(藥師佛)과 일광 보살(日光菩薩), 월광보살(月光菩薩)을 높게 돋을새김 하여져 있습니다.

 

 

불상에 해와 달을 표현하는 사례는 중국 당대에는 일부 있지만 고려 이전 작품의 경우 거의 남아 있는 작품이 없어서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매우 귀중한 작품입니다.

 

본존불인 약사여래는 가운데 앉아 있는 모습이며, 그 좌우 양쪽에 있는 두 협시보살상인 일광 보살과 월광보살은 입상으로 서 있습니다.

 

큰 크기의 본존 약사불은 얼굴이 매우 크지만 마모가 심한 편이며 남아 있는 윤곽으로 보아 양감 있는 얼굴이었을 것으로 보이며 얼굴에 비해 신체가 약간 작은 듯 한 느낌입니다.

 

 

양협시 일광 보살과 월광보살 입상은 신체에 비해 머리 부분이 높고 큰 점이 특징이며 이는 보관 위에 해와 달을 표현하였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이 마애불의 재질에 대한 언급이 없어 자료를 찾아보니 타포니 현상으로 전체가 퇴적암 가운데 역암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물동 마애삼존불은 돌의 재질이 역암입니다.

어물동 마애불의 돌의 재질은 역암입니다. 안내문에 이런 돌의 재질도 언급해 주면 좀 더 이곳을 찾은 분들의 괌 심사가 반영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바위 모서리에 직각으로 깎아낸 곳은 집을 만들기 위해 서까래를 걸쳤던 자리이다. 이것으로 보아 원래는 이 마애불이 실내에 모셔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만병이 치유되는 것으로 믿음이 있는 약사여래불을 울산에서 만나 보실 수 있어 병을 치유 목적으로 찾는 분들의 방문이 많은 곳 가운데 한 곳입니다. 더운 여름날 주변에 시원한 바다도 찾아보고 문화유적지도 둘러보면 더욱 좋겠습니다.

 

 

 

 

Posted by 경주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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