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과 주택가 건물이 있는 울산 남구의 도심 속에 위치한 이휴정과 용연서원을 다녀왔습니다. 

 

△ 용연서원 모습

조선 태종 때 이예 선생의 정성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영조 13년에 용연사로 창건되었다가 서기 1782년 석천리의 석계서원(石溪書院)으로 이건하였는데, 고종 5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습니다.

이후 학성이씨 월진문회에서 유림의 공의를 얻어 10억여원의 비용으로 용연사 옛 터에 용연서원(龍淵書院)을 창건하였습니다.

 

석계서원 포스팅 링크▼

https://blog.ulsan.go.kr/8870

 

 

△ 용연서원 동재: 명성재

용연서원 동재에는 조선 최초 통신사 충숙공 이예 선생 홍보관이 있었습니다. 내부로 들어갔더니 이예 선생님의 성장 배경, 업적을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 홍보관 내부 모습
△ 이예 선생 사진

이예 선생님은 1373년 울주군 말응정(현재 중구 태화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왜구의 침입으로 인해 어머니가 납치되는 불운을 겪게 됩니다. 1397년 울주군수 이은이 왜구들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예는 자진하여 뒤따라갔고,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예는 태종 10년까지 매년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잡혀갔던 포로들을 구해 돌아왔으며, 조선 전기의 외교관으로 40여 회에 걸쳐 일본에 통신사로 파견되어 667명의 조선 포로를 찾아오고 그 외에도 다양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 이예의 업적

◈ 문인제도 : 일본으로부터 바다를 건너 조선으로 오는 사람은 문인 발급권을 대마도주에게 부여하고 관리함으로써 왜구로 인한 폐해를 줄이고 조선에 입항하는 일본인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함

◈ 계해약조 : 1443년 대마도에 파견되었던 체찰사 이예가 주도하여 대마도주와 세견선 등 무역에 대해 맺은 조약

◈ 문화교류 : 대장경 및 불경 사급을 통한 불교문화와 인쇄문화를 일본에 전파, 일본식 자전 물레방아 조선에 도입, 일본과 같이 조선에서도 화폐 사용을 건의, 사탕수수 재배와 보급 건의, 민간에 의한 광물 채취의 자유화와 이에 대한 과세 건의, 화통 및 완구를 통철 대신 무쇠로 제조할 것을 건의 등

 

 

△ 울산문화예술회관 포스터

충숙공 이예 선생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시행한 2005년 2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되었고, 2010년 외교통상부가 시행하는 '2010년 우리 외교를 빛낸 인물'로도 선정되었습니다. 이예의 삶은 일본에서는 소설, 오페라 등으로 만들어졌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공연 및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 용연서원 서재: 온고재 사진

서거정이 쓴 태화루 현판은 이휴정에서 소장하다가 현재는 울산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고, 복제본을 용연서원 서재인 온고재에 전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학성 이천기 일가묘 출토복식'유물의 복제본이 용연서원 온고재에 전시되고 있다고 합니다. 도난 및 훼손 방지를 위해 원본은 울산박물관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 충숙공 학파 이선생 신도비

 

△ 이휴정 모습(정면 3칸, 측면 2칸, 익공양식)

이휴정은 원래 서기 1662년 현종 임인년 봄에 성균진사 이동영이 28세에 태화강 위 은월봉 아래에 정자를 세워 정호를 이미정이라 하였습니다. 1664년 어느 날 길을 지나던 박세연이 이 정자를 보고 이르기를 "산, 산이여 아름답고 아름답도다. 이 아름다운 곳이 더욱 아름답고, 물, 물이여 아름답고 아름답도다. 아름다운 곳이 더욱 아름답도다."  암행어사 박세연이 이곳에 남긴 글에 의해 서기 1666년에 이휴정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습니다.

 

울산 도호부 학성관의 남문루를 서기 1940년 경진에 헐게 되자 학성이씨 월진문회에서 이를 사들여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여 태화루 현판을 떼어내고 이휴정 현판을 달게 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1983년 경상남도 지정문화재자료 제11호로 지정되었다가 울산광역시로 승격되면서 1997년 10월 9일 울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2003년 9월 25일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옛 설계도를 참고하여 2005년 8월에 중건하였으며, 2007년 10월 단청공사가 완공되었습니다. 2008년 4월에 복원 낙성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 이동영 가문에서 사용하던 돌벼루

이휴정 앞에는 이동영 가문에서 대를 이어 시문과 정담을 나누며 사용하던 '돌벼루'를 볼 수 있었습니다.

역사를 알면 현재가 보이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휴정과 용연서원을 둘러보며 외교협상 역량과 애족의 마음이 뜨거웠던 충숙공 이예 선생님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왜구의 이해를 만족시키면서 원칙을 들어 외교관계를 맺어가는 지혜를 배울 수도 있었답니다. 조선을 떠나 일본으로 가는 길은 지금은 비행기를 타고 쉽게 갈 수 있겠지만, 당시는 왕복 1년이 걸리는 먼 길이었습니다. 폭풍을 만나 표류하다 일본 귀족의 도움으로 살아난 적도 있었고, 해안의 해적에게 피습을 당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외교관으로서 목숨을 걸고 사명감 하나로 험난한 길을 40여회나 나섰고, 많은 이들의 구했던 이예 선생의 지혜와 업적을 살펴볼 수 있는 곳에서의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이휴정과 용연서원은 평일 09:00~17:00에 관람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평일 17:00시 이후와 주말, 공휴일은 견학할 수 없음)

 

도심 속의 울산의 문화재도 관람하시고 이예 선생님의 업적을 통해 지혜를 배우는 의미있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송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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