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경제에 있어서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도시입니다. 조선과 자동차와 석유화학 업종에서 단연 두드러지며 고래도시의 면모와 항만으로도 제 역할을 감당해 왔습니다. 하나 아쉬운 점은 조선업의 침체로 경제상황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이며, 이에 따른 근로자의 이직 등으로 울산인구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 한화케미칼 공장의 불빛

 

용연공단의 울산화력발전소

 

울산시와 지자체들의 노력과 노사정의 화합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며 활화산처럼 다시금 울산의 경제가 융성하기를 기원해 봅니다. 이런 마음이 있어서 저는 울산석유화학 공단 야경 스케치를 취재하러 나섰습니다. 1962년 공단으로 지정되면서 조성된 울산석유화학 단지는 대한민국 중화학공업의 핵심으로 이 분야의 개척자로서의 선도적인 역할을 감당해왔습니다.

 

울산화력발전소와 가로등 불빛

 

석유화학 공단을 조성하기 위해 수많은 각종 건설장비와 인력들이 대거 유입되었고, 자고나면 도로가 새로 닦였습니다.  발전소 전기공급을 위한 전봇대가 도시 곳곳에 세워졌고, 사원들을 위한 부지에 사택들이 건설되었습니다.  공장들이 시운전을 마치고 불 밝히며 돌아가자 희망의 선순환이라는 혈액이 울산경제의 실핏줄마다 풍성하게 공급되었습니다.

 

 

가난했던 시절 부모님들은 맞벌이를 하면서도 자녀들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자녀들 학업을 뒷바라지하며 경제개발에 헌신했습니다.  그때의 부모님들이 공장의 통근버스를 타고 자녀들을 위해 물심양면 노력했기에 이제 자녀들은 자가용 한두 대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없고, 웬만해선 아파트에 거주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습니다.

 

 

▲용연공단 야적장의 대형 크레인과 컨테이너

 

부모세대의 노력은 울산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자 도시라는 명성으로 돌려받게 되었습니다저도 어릴 때 부모님의 이주로 울산이 고향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 부친은 부두의 근로자로 일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였고, 퇴근한 부친의 발을 씻겨드렸던 적도 많았습니다모친은 맞벌이를 하면서 회사에 통근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정류장에 마중 나가던 기억이 선연합니다.

 

 

 

큰누나가 하루는 동생들을 몽땅 이끌고 용연공단이 종점인 14번 버스에 우리를 태웠습니다저는 당시 초등학교 다니던 어린 시절이었는데 부곡으로 가는 길 버스 안에서 유리창을 통해 보았던 은하수처럼 반짝이던 공장의 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장생포 워터프론트에서 건너편 장생포나루 쪽을 찍었다.

 

장생포항에서 찍은 석유화학공단

 

울산의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모두가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누군가의 말처럼 위기가 곧 기회가 될 것”이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울산경제가 독수리처럼 날아오르길 희구()하면서 야경스케치 작업을 마쳤습니다.

 

장생포 고래문화특구의 고래바다여행선

 

울산대교 전망대에서 찍은 장생포 해안과 용연바닷가

 

 

 

Posted by 박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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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blog.ulsan.go.kr BlogIcon 명품서진 2019.03.03 22: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울산 공단야겡 관광 멋진포스팅 짱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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