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는 고려 말, 울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조선이 들어선 후, 그는 일본을 오가며 외교관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기록으로 따지면, 울산 출신인 최초의 전문 외교관일 것입니다. 울산을 대표하는 가문인 학성 이씨의 시조이기도 하지요. 그의 후손들은 대대로 울산과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가문을 세우고, 그 가문은 울산과 대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신기하고도, 재미있는 인연입니다. 

 

▲ 석천마을을 지나 석계서원으로.

이예는 고려말과 조선초기를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의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쉽기도 합니다. 이예는 학성이씨 가문의 시조이며, 그 후손들은 이예를 추모하는 기념물을 많이 남겼습니다. 고즈넉한 마을 석천마을 역시 학성이씨가 모여살던 곳입니다. 석계서원은 바로 이예를 추모하기 위해 후손이 만든 서원이지요. 


 

▲ 학성 이씨를 기리는 비석이 보인다.  


고려 말, 한반도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세가 약한 왜구들은 주로 바닷가 지역을 약탈했고, 세를 불린 후 내륙으로 진격하기도 했습니다. 바닷가에 위치한 울산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예 역시 왜구의 피해자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왜구에 의해 끌려갔고, 이예와 다시는 만나지 못합니다. 어머니를 찾지 못한 안타까움은 이예가 왜구에 끌려간 다른 이들을 돕게 된 계기가 된 것이지요. 

 


▲ 석계서원에서 바라본 회야강.

 

회야강을 따라 거슬러가면 석천마을이 나옵니다. 이곳에 석계서원이 있지요.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회야강의 전경은 후손들이 왜 이곳에 터를 잡았는지 알 수 있게 합니다. 운이 좋게도 해가 지는 순간 이곳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즈막한 담자락을 따라 걷다 하늘을 올려봅니다. 붉게 물든 산자락과 아래 보이는 강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줍니다. 

 

▲ 석계서원 전경. 


이예는 요즘 말로 하면 "흙수저"였습니다.  양반이 아닌 아전이었습니다. 왜구가 울산을 침입해 군수 이은을 납치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예만이 자진해서 군수를 따라가 보필했습니다. 왜구들마저 감복한 책임감과 충성심이었습니다. 조정에서 파견한 통신사 덕에 군수 이은과 이예는 풀려나 울산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예는 면천을 하고 외교관이 되었습니다. 

 

▲ 충숙공 이예 선생 사적비. 


후손들이 세운 충숙공 이예선생사적비를 돌아봅니다. 이예 선생이 돌아가신지도 벌써 574년이 흘렀습니다. 비석은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만든 것이니, 이예 역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역사의 엄정함을 잘 알았습니다. 아전 출신이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양반이 된 이예는 후손들에 의해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사적비 앞에서 세월을 넘은 감흥을 느낍니다. 

 


▲ 충숙공 이예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석계서원. 


무엇이 이예를 불멸의 기억으로 만들었을까요? 일본은 지금이야 편하게 비행기로 갈 수 있는 이웃이지만, 그때에는 험한 파도를 건너야했습니다. 무사히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배를 타고 가다 생명을 잃은 경우도 많았고, 도착한 후에도 교섭이 잘못되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이예는 끌려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다시 오키나와로 떠났습니다. 

 

 

▲ 울산에서 일본으로,, 다시 서울에서 오키나와까지,,, 


태종을 거쳐 세종 때까지, 이예는 무려 40여 차례나 일본을 넘나 들었습니다. 울산에서 태어난 이예지만, 외교관이 된 후는 울산에 머문 시간 보다 외국에 나간 시간이 많을 것입니다. 그가 외교관으로 일한 시기를 계산하면 거의 1년에 한번 꼴입니다. 가까이는 대마도에서 멀리는 오키나와까지,,,,이예의 발길은 주로 조선에서 납치된 사람이 있는 곳을 향했습니다. 

 

 

▲ 선인이 남긴 업적은 기록으로 남았다. 


그가 다시 조선에 송환한 사람의 수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려 667명에 이릅니다. 해적에 끌려가 노예생활을 했던 사람들에게 이예는 새 삶을 찾아주었습니다. 그들의 가족 역시 마찬가지였겠지요. 노예보다 못한 삶을 살았던 사람에게 다시 새 삶을 주었던 이예는 조선의 외교관이자, 울산의 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돌 하나, 기둥 하나,,, 정성으로 세운 서원은 그의 업적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일 것입니다.


 

▲ 이예의 발자취를 쫒아본다.


이예를 기린 석계서원은 석천마을에 있습니다. 석계서원 말고도 이 마을 자체가 이예의 유산이라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학성이씨 후손들이 터를 잡고 만든 마을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걸어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마을입니다. 고즈넉한 담장 너머로 보는 전통가옥. 500년의 세월을 넘어 이예의 삶은 감동을 주기 충분합니다. 석천마을을 걸어 석계서원까지,,, 울산의 외교관 이예의 발자취를 쫓아 봅니다. ^^

 


 




Posted by Tel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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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blog.ulsan.go.kr BlogIcon 명품서진 2019.03.03 22: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예선생에 대해 새롭게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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