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복회를 조직하여 사령관으로 활동하였던 박상진 의사

1945년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21년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합니다.


 

박상진 의사 생가는 지금 한창 주변정비사업으로 공사장 중간에 있는 꼴이되어 조심해서 접근해야 합니다.

공사가 완료되면 이곳은 역사테마공원으로서 그 위상을 높이게 될것입니다.


 

생가 앞에 도착하여 보니 이 집은 사랑채, 안채 등 모두 6동의 건물로 이루어진 기와집으로, 전체적으로 볼 때 ‘ㅂ’자형 구조를 가진 조선 후기 양반 살림집입니다.


문간체를 지나면 'ㅁ'자형 안채와 사랑채가 있으며 하나의 건물은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고헌 박상진의 출생과 성장

 

조선 말기인 1884년 12월 7일 울산군 농소면 송정리에서 승지 박 씨와 여강 이씨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4세 당시 학덕이 높은 왕산 허위(애국계몽사상가, 의병장) 문하에 입문한 후 1902년 상경하여 정치와 병학을 배우며, 명사, 문객 들과 교제하며 국제 정세를 습득합니다.

1906년 양정의숙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공부하였고, 태백산 호랑이 신돌석과 의형제를 맺었습니다.


1908년 신돌석이 일제의 교활한 농간에 빠져 순국하고 스승 허위는 고종 황제의 밀명을 받고 의병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사형을 당하고 맙니다. 이를 지켜본 박상진은 스승의 시신을 수습한 후 홍성에서 상경한 김좌진을 만나 서로 의기투합하여 의형제를 맺게 됩니다. 이는 뒷날 김좌진이 광복회 부사령으로 활동하는 계기가 됩니다.


구국을 향한 여행

 

1907년 24세의 박상진은 양정의숙 법과에 입학하여 법률학과 경제학을 공부합니다. 1910년 열심히 공부한 결과 판사 시험에 합격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한일강제병합 이후 우리의 독립투사들을 자신의 손으로 심판해야 한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평양 지원에 발령까지 받았으나 결국 부임하지 않고 만주와 연해주, 상해 등지로 여행을 떠납니다.


정의로운 판사 되어 조국 위해 살려 했지만 신념 하나로 왔던 이 길의 끝은 여기인가,  이렇겐 할 수 없어 나는 조국을 위해서 무얼 할 수 있을까


여행지에서 느낀 것은 한일합방(1910년)으로 나라 잃은 뼈저린 아픔이었고 일제에 대항하여 의병을 능가하는 군사력과 군사 조직을 위한 자금의 필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1912년 삼정물산에 전답을 저당 잡혀 빌린 자금으로 김덕기, 오혁태와 함께(상덕태상회)라는 곡물상회를 대구에 설립합니다. 겉으로는 무역업을 겸한 곡물상이었지만 속 내용은 독립운동 기지 및 각종 연락기관, 자금조달 기관이었습니다.

1915년 7월 15일(양력 8월 25일) 그의 나이 32세 대한광복회를 조직하여 친일파를 처단하고 불법 징수된 세금을 되찾아오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게 됩니다. 조국 하나만을 위해 우린 여기서 싸운다. 어떠한 역경들도 우리를 막을 수는 없다. 조국 하나만을 위해 우린 여기서 싸운다. 어떠한 역경들도 우리를 막을 수는 없다. 내일이 오면 조선의 광복을 맞이하리라.


1918년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체포당할 것을 알면서도 고향에 내려가 결국 일본 경찰들에게 붙잡혀 대구 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게 됩니다.


절명시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기 어려운지라 다행히도 남자의 몸을 얻어가지고 한가지 일을 성공하지 못하고 간다면 청산은 조롱하고 녹수는 찡그릴 것이다. 어머님 장례 마치지 못하고 임금의 원수도 갚지 못했네.나라의 땅도 찾지 못했으니 무슨 명목으로 저승에 가나. 나는 지금 나의 행동에 책임을 다하였을 뿐 나는 지금 자식 된 책임을 다하였을 뿐.


이후 국권 회복과 항일투쟁에 앞장선 공로를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그의 삶이 비록 이처럼 짧았지만 오히려 부끄럽지 않고 두드러진 삶을 살았기에 오늘날도 세인들은 그를 존경하며 그의 행적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조선의 국민으로서 책임을 다하였을 뿐이다. 1921년 8월 13일 박상진 의사 순국


대지주였던 박상진 의사는 모든 재산을 독립운동자금으로 사용하여 집안은 몰락하였고, 이 집도 남의 손에 넘어갔으나 2002년 울산시가 매입하여 2007년 복원 정비 사업을 완료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자유와 번영을 누릴수 있는것은 바로 이러한 우리의 선조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누릴수 있는것입니다.

그 희생정신을 토대로 다시는 국력이 약해져 나라를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해야할것이며 희망찬 나라사랑의 길을 딱아야 합니다. 이번 주말 사랑하는 자녀의 손을 잡고 우리나라를 되찾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신 박상진 의사 생가를 한번 방문하여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Posted by 정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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