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여행에서 한 번은 가보아야 할 곳으로 울산동헌을 꼽을 수 있습니다.


울산에 읍성이 있는데 이곳 울산읍성 안의 중심 건물이 바로 울산동헌이기 때문입니다.

울산동헌은 울산도호부의 수령이 공무를 처리하였던 장소이며

내아는 수령이 살았던 살림집을 말합니다.




입구로 걸어가면 웅장한 출입문이 방문자를 반기는데 이곳의 이름은 가학루입니다.

가학루는 울산동헌의 고각루로 시간과 유사시 긴급상황을 알리는 기능을 하였습니다.

1600년대에도 존재하였으며 1847년 무너질 위험이 있어 허물었다가

1859년 도호부사 이충익이 다시 중건하였으며 1930년대 일제강점기 사랴졌습니다.

이후 가학루가 소실된 지 80여 년 만에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리원판 사진을 발견하고

2017년 12월 복구하였습니다.




가학루 2층으로 신발을 벗고 올라가면 북이 하나 놓여 있는데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은 북을 칠 수 있답니다.




다시 내려와 걸어가면 동헌이 보이는데

마루에는 모형을 설치하여 당시의 상황을 좀 더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동헌을 멀리서 쳐다보면 한옥의 멋스러움이 보이며

정면 6칸, 측면 2칸이며 대청은 가운데 2칸이며  양 끝으로 각각 1칸씩의 방을 두었습니다.




이곳 울산동헌은 주변의 도시화가 가져다 온 환경 변화에 도시 속의 작은 공간으로 변하였지만

울산읍성이 건재한 시절에는 위풍당당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이곳 울산동헌의 건축시기는 1681년(숙종 7) 울산 부사 김수오가 처음 지었다고 합니다.

이후 그의 아들인 부사 김호가 일학헌이라 편액 하였으며,

1763년(영조 39) 부사 홍익대가 다시 지어 만학헌으로 개칭합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는 울산 군청으로 사용하였으며, 해방 이후에는 울산 군청 회의실로 사용하였습니다.




내아는 살림집입니다.

그래서 이곳의 조형물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모습을 담아놓았습니다.




내아 건축물의 모습을 보면 온돌방 4칸, 대청 2칸, 부엌과 누마루 각 1칸씩을 두었으며

하늘에서 바라보면 'ㄱ'자형 건물입니다.




특히 울산지역에서는 상류주택의 특징이 '一'자형 안채에 사랑방과 누마루를 덧붙인 형식으로 1동을 이루고 있습니다.

울산동헌 내아 또한 울산지역 상류주택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효자 송도 선생 정려비로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10호 입니다.




조선 초기 울산에 살았던 송도 연안송 씨는 병든 부모를 10여 년 동안이나 정성껏 간호하였지만 돌아가시자 사당을 모시고 제사를 지냅니다.




뒤로는 비석군이 위치하고 있으며

그리고 그 뒤로는 오송정이 있는데 지역 어르신들의 휴식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비가 그 가운데 위치하고 있습니다.

보물 제441호이며 여기에 있는 것은 복제품입니다.

1962년 태화동의 '반탕골'에서 발견되었으며, 태화사는 자장이 643년(선덕여왕 12) 당나라에서 돌아와 창건한 사찰입니다.

탑신은 종 모양이며 앞면에 감실을 설치하였으며 석가모니의 전신 사리를 봉안했습니다.

표면에는 12간지에 나오는 12마리 동물을 돋을 무늬로 새겼습니다.




울산동헌과 내아를 돌아보며

오랜 시간 역사를 지켜보았던 현장을 돌아본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시의 역사적인 건물과 장소를 돌아보면 그 시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으며

그때의 역사를 생각하며 오늘 현재의 우리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라사랑과 백성사랑의 숭고한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Posted by 정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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