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놀이 진 후, 상쾌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얼마전까지 폭염이 거짓말처럼 느껴집니다. 태화강 남쪽에서 태화교를 건너 걷습니다. 인공광이 켜져 태화루는 환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오늘의 목적지는 바로 이 태화루입니다. 


▲ 태화강의 남쪽에서 바라본 태화루.


태화루는 복원된 건물입니다. 밀양의 영남루, 진주의 촉석루와 함께 영남 3대 누각이라 불리던 곳이었지요. 3곳 모두 강을 바라보는 언덕에 세워진 것이 공통점입니다. 수많은 시인묵객이 그곳을 찾아 시를 남긴 것 역시 비슷합니다. 


▲ 어둠이 깔린 태화루는 조명으로 빛난다. 


울산부사를 지낸 박첨 역시 이곳을 찾아 시를 남겼습니다. 그 시는 영남읍지에 실려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나라를 걱정하는 목민관의 심정이 시 한 수에 그대로 실려 있지요. 박첨이 태화루에서 이 시를 지었던 시기는 추정할 뿐입니다. 



▲ 복원된 태화루. 


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울산 호수와 바다에 원룡이 있어 / 높은 침상에 상쾌한 기운이 들어오네." 누각은 2층 구조로 높게 지었습니다. 멀리 바다,, 점점이 호수가 많은 풍경, 불어오는 바람이 상쾌하다는 표현을 보면 아마 더운 여름이 아닐까 싶습니다. 



▲ 누각은 멀리 태화강에 비치고,,, 


다음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누각은 멀리 태화강에 비치고,/ 산 그림자는 처마 깊숙이 들어오네." 맑은 태화강 표면에는 태화루의 그림자가 비칩니다. 강 건너편 남쪽 산 역시 마찬가지지요. 산 그림자가 처마 깊숙하게 들어온다는 표현은 절묘합니다. 



▲  옛 선인의 흔적을 이곳에서 찾아본다. 


"목민관이 되어 남쪽 고을에 내려와도 / 임금을 그리워해서 북쪽을 바라본다." 박첨은 울산부사로 서울에서 내려왔습니다. 여기서 북쪽은 임금이 계시는 서울을 말합니다. "남쪽 고을"은 태화루가 있는 울산입니다. 목민관으로서의 의무와 임금의 그리움이 이 한구절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 여름의 끝자락, 선선한 바람이 상쾌하다. 


"나라 걱정은 중선(仲宣)의 마음과 같지만, 가득한 백발에 비녀를 탄식할 뿐." 여기서 중선(仲宣)이란 중국 삼국시대의 인물을 이르는 글입니다. 삼국시대 왕찬은 자신의 자를 "중선"이라 했지요. 동탁의 난을 피해 남쪽 유표에게 몸을 의탁했습니다. 



▲ 울적한 시인은 이곳에서 시를 남겼다. 


수도 낙양의 혼란을 피해 남쪽 형주에 온 왕찬은 유표에게 몸을 의탁했습니다. 강릉의 성루에 올라, 북쪽의 고향을 생각하고 울쩍한 마음에 시를 짓게 되지요. 이 시가 등루부(登樓賦)입니다. 박첨은 이 왕찬의 심정과 같음을 나타내는 표현한 것이지요. 



▲ 시인의 시는 오늘로 전한다. 


아마도 울산부사 박첨은 왕찬에게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북쪽 수도에서 남쪽으로 온 것도 그렇고, 혼란한 나라를 바로 잡고자 하는 마음 역시 마찬가지라 느꼈던 것 같습니다. 풍경 좋은 누각에 올라 비슷한 심정의 시를 쓴 것 역시 일치합니다. 



▲ 태화강에서 바라본 풍경. 

 

현실을 바꾸고 싶으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으로 시는 끝을 맺습니다. "가득한 백발"이라는 시구는 박첨에게 남은 세월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지요. 그러나 박첨의 시는 오늘에 남았습니다. 태화루에 돌아보며 이곳에서 나라를 걱정한 한 목민관을 생각합니다. 





Posted by Tel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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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오이 2018.08.28 1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시(漢詩) 설명까지 들으니 애잔한 느낌도 드네요~
    태화루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네요
    스산한 가을밤에 산책 좋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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