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기자] 임란공신 추모제례 지내던 곳, 창표사․창표당
누리 GO/블로그기자2018. 8. 3. 08:30

울산의 대표 문화재인 서생포왜성은 잘 알려져 있는데요. 서생포왜성 안에는 중간지점에 선조 32년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애국지사 위패를 모셨던 창표당 터가 남아 있습니다. 과거 임란공신을 모시기 위해 세워졌던 창표사․창표당이 70여년 만에 옛모습 되찾아 다시 우리의 품으로 돌아 왔습니다. 창표사․창표당의 모습을 함께 보실까요.



▲ 창표사․창표당 모습


창표당은 정유재란에 참전한 명나라 제독 마귀가 승전을 기념하는 축하연을 열기 위해 지은 건물입니다. 창표사 역시 의병장들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건립되었으나 허물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해요.


 

▲ ▲ 표사․창표당 모습



창표사,창표당은 1845년 기장현감으로 부임한 마귀제독의 후손 마하백이 서생포성에 찾아와 그린 지도에 이곳 터를 표기한 것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1906년 지역주민들이 기울어 가는 국운을 되살리기 위해 창표당과 창표사를 중건하였으나 1938년~1945년 소실 되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 창표사․창표당 모습



1999년 창표당,창포당 복원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임란공신 추모제를 지내는 복원사업을 추진해 왔습니다. 2002년 울주군이 부지매입을 하면서 본격 시작되어 향사 기능과 활용성을 고려하여 2016년 11월 창표사를 중심으로 일곽을 중건하였습니다. 



▲ 창표사․창표당 모습



창표사는 전체부지 7400㎡에 창표사·전사청(화장실)·사준문 3개동(64.97㎡)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용감한 의병들의 혼을 기린다’는 뜻의 창표사는 원래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 명나라 마귀 제독이 승전을 기념하는 축하연을 열기 위해 지은 초가 4칸의 건물이었는데요. 이후 56위의 임란공신을 모신 사당으로 사용해오다 사라졌고, 1906년께 한차례 중건됐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완전히 소실 되었습니다. 70여년 만에 복원되어 과거의 모습은 남아있진 않지만 옛모습을 떠올려 보는 시간이 되실 거예요.



▲ 굴립주 건물터 



굴립주는 주춧돌 없이 그대로 땅에 박아 세운 나무기둥을 말합니다. 2011년 실시한 발굴조사 결과 이 구역에서 2동의 굴립주 건물터를 확인했습니다. 굴립주는 먼저 구릉 경사면을 계단형태로 고르게 하여 평지를 만들고 지름 70cm 내외, 깊이 70~110cm의 구덩이를 판 후 내부에 지름 약 20cm의 나무기둥을 세워 2동의 건물을 일렬로 배치 하였습니다. 2동의 건물은 약 3m의 거리를 두고 지어졌다고 합니다. 굴립주는 복원된 모습이 아닌 건물터만 만날 수 있습니다.






▲ 창표사․창표당 모습



이번 여름 방학 현장학습 장소로 서생포왜성을 고려 하고 있는 분들은 주목 해 주세요! 서생포왜성 내에 창표사가 복원이 완료되었습니다. 현재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창표사는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의 얼이 서려 있는 곳으로 아이들에게 역사 교육의 장소로 추천 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