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병영성 산책탐방로는 성곽을 둘러보며 선조들의 당시 상황을 느끼며 나라를 위해 희생한 그들의 충정을 되새기는 울산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이 될것입니다.  




외솔기념관과 생가를 지나니 외솔한옥도서관이 나옵니다. 

도서관 옆으로 녹색공간이 보여 걸어가 보니 이곳은 성곽이었습니다. 


멀리 울산만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이곳은 병영성이며 잘 정비된 길은 주민들의 산책코스로 인기가 

높습니다. 길에는 야자 매트가 깔려있어 푹신하여 무릎관절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도 부담 없이 걸을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병영 성곽 위를 걸으면서 왜 이곳에 성이 있었을까 생각하여 보게 되는데요 

울산은 오래전부터 뱃길이 발달한 항구도시인데다 철광산이 있어서 군사 시설이 많았습니다. 


울산 병영성이 있는 이곳은 고려 때부터 진이 설치되어 군사가 주둔하였으며, 조선 태종 때에 이 진을 잠시

경주로 옮겼다가 1415년(태종 15)에 다시 제자리로 옮겨와 경상좌도의 병마도절제사의 주둔처가 됩니다.  

당시의 방어전략에 따르면 염포·개운포·서생포 등으로 침입하는 왜적은 수군이 막고, 육지로 상륙한 왜적은

 이곳 병영성에서 막았다고 합니다. 


전라도에는 강진에 전라도 병영성으로 하나뿐인 병영이 경상도는 군사요충지여서 

울산 경상좌도 병영성과 진주 경상우도 병영성 이렇게 2곳에 있었습니다 

현재의 명칭으로 본다면 병영성은 군 사령부, 성의 수장인 병마절도사는 육군 대장급이 됩니다. 


울산 병영성의 규모를 보면 황방산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 말단부의 해발 45m 이하에 해당하는

 낮은 구릉을 이용하여 쌓은 포곡식 성이며, 처음에는 성벽과 여장 등의 기본적인 시설만 있었으나 세종 때

에 이르러 국방력 강화의 일환으로 4개의 문에 옹성을 쌓고,  성벽이 곧게 뻗은 곳의 방어력을 높이는 적대

를 축조하였으며, 성벽 바깥으로 해자도 파는 등 시설을 더합니다. 


'문중실록'에 의하면 성의 크기는 둘레 3,732척(포백척 적용, 약 2.1km), 높이 9척(약 4m), 여장높이 3척(여장

908개소), 적대 21개소, 4문 옹성, 성내 우물 11개소,  해자가 부분 수축된 것으로 나타나며 발굴조사를 

통해 성벽의 너비는 약 7m인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병영초등학교 일대에 객사와 동원 등 관청 건물이 집중적으로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정유재란 때 병영성의 인근에 주둔하던 왜군이 이 성의 돌을 가져다가 왜성을 쌓았기 때문에 대부분 폐허화

되어버리는데 문화재청과 울산광역시 중구청이 종합 정비 계획을 수립하고 발굴조사를 실시한 자료를 토대

로 2012년부터 북문지~서문지~동문지 구간의 성벽과 주변을 순차적으로 정비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성곽을 걷다 보니 돌출되어 있는 부분을 보게 되는데요 

이것은 치성이라 부르며 적을 측면에서 공격하기 위한 성벽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울산 병영성의 경우는 약

 100m의 간격으로 건설되었는데 이것은 화살의 유효사거리를 계산에 넣은 것이랍니다. 


북문지 아래로는 지하터널을 만들어 차량 통행에 이용하도록 하였네요 


이곳 성벽 10m 밖으로 해자가 있는데요 폭 8m, 깊이 2m인 해자를 둘러 팠던 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울산 병영성을 돌아보니 성을 쌓으며 피땀을 흘렸던 역사가 있었기에 현재 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울산의 대표적 군사유적지이며 많은 사람들이 산책하는 울산 병영성으로 한번 떠나보시는건 어떨까요


 


Posted by 정한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s://blog.ulsan.go.kr BlogIcon 명품서진 2018.05.17 20: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병영성 잘 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