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솔 최현배 선생님은 한평생 한글이 목숨이다라고 하시며 일제강점기 우리나라를 되찾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우리 말과 글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믿으며 한글 보급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독립운동가이며

광복 후에는 여러 교과서와 우리말 큰 사전을 편찬하였으며 한글 가로쓰기 체제를 확립하는 등에 힘쓰셨습니다.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님에 대하여 알아가는 중 그의 아호 '외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하여졌습니다. 

'외솔'이란 아호를 정한 이유는 스스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여 봅니다. 

'외로운 소나무' 그의 아호가 '외솔'임을 다시 생각하여 봅니다 


외솔 최현배선생님의 생가터

음악 감상 시간에 자주 들었던 테너 엄정행의 선구자 가곡이 떠오릅니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 강은 천 년 두고 흐른다. 

오늘 더욱 가곡 '선구자'의 가사가 머리를 맴도는 것은 바로 외솔 최현배 선생님 생가와 

그의 기념관에 와있기 때문인데요 

그의 삶이 바로 한글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 아닐까요 


주시경 선생님을 만난 외솔 최현배선생님

어려서는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으며 1910년에 관립 한성 고등학교에 입학합니다. 

한성 고등학교 시절 박동 보성학교 안의 국어 강습원에서 주시경 선생님의 강의를 받았는데 

이 시간이 외솔 최현배 선생님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됩니다. 

주시경 선생님께서는 “국어는 우리 민족정신의 형성 기반이며 우리의 생각과 행동 세계를 지배하는 것”

이라는 민족주의적인 언어관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며 이후 국어 연구, 국어 운동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조선어학회 수난사건과 우리말 큰사전

조선어학회 사건은, 일제가 조선어학회를 어문 활동을 통하여 독립운동을 하는 단체로 규정하여 

주요 회원들을 체포, 징역형에 처한 사건을 말합니다. 

1926년[조선민족 갱생의 도]라는 글을 발표하여 민족이 다시 살아나기 위한 실천적 이상주의를 고취하고,  

조선어학회의 전신인 조선어 연구회의 회원이 되어 <한글>지 창간, ‘한글날’ 제정에 참여하였으며, 

1929년에는 조선어 사전 편찬회의 준비 위원 및 집행위원으로 활동, 

1933년까지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이루어내기 위해 진력하였고 표준어 사정, 

외래어 표기법 제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1938년 선생은 이른바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경찰에 검거되어 옥고를 치르고 연희전문학교 교수직에서 

강제 퇴직됩니다. 

1942년 한글을 역사적으로 또 이론적으로 연구한 [한글갈] 출판  다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해방이 될 때까지 옥중 생활을 하였습니다.  



광복된 조국의 교육 이념과 국어 교과서의 뿌리를 내리다.

대한민국 어문 정책의 큰 틀 해방 후 약 한 달 후인 9월 21일에 선생은 미군정청 편수 국장에 

취임하였습니다. ‘조선 교육심의회’가 결의한 교과서 편찬의 기본 방향은 첫째로 초․중등학교 교과서는

모두 한글로 하되,  한자는 필요한 경우에 괄호 안에 넣을 수 있게 한 것이며, 둘째로 교과서는 가로

쓰기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글 가로쓰기와 글자의 혁명

한자 폐지를 주장하는 근거로 배우기 어려운 한자 때문에 문맹자가 많으며,  타이프라이터와 같은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기 어려우며,  어려운 한자 때문에 과거의 교육이 문자 교육에 너무 치우쳐 민족적 독창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 등을 들었습니다. 

‘한글 가로쓰기’에 대해서는, 사람의 두 눈이 나란히 수평으로 나 있고, 우리의 눈은 좌우로 보는 시야가 넓

고 용이하다는점 

일제강점기에 <독립신문>에서 가로쓰기를 하였던 주시경 선생님의 뜻을 이어 해방 후 이를 이론화하고 가

장 강력하게 주장을 하였습니다. 



말과 글은 우리의 얼이다

조선어 사전 편찬회’취지문을 보면 “인류의 행복은 문화의 향상을 따라 증진되는 것이요, 문화의 발전은 언

어, 문자의 합리적 정리와 통일로 말미암아 촉성되는 것이다.  어문의 정리와 통일은 제반 문화의 기초를 이

루며 인류 행복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외솔 최현배 선생님은 국어사전을 만드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습니다 

국어사전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고유한 언어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고  

우리가 고유한 언어와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일본인과는 전혀 다른 민족이라는 것을 세계에 알리고  

우리의 독립이 정당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도 필요했었기 때문입니다


‘한글 사용빈도 조사’를 통해 체계적인 한글 연구에 기여 

한글의 사용빈도 조사는 타자기 등의 자판에 어떤 글자를 어떤 위치에 배열할 것인지를 정하는 데 절대적으

로 필요한 통계 자료입니다 한글의 기계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선생이 아니고는 발상이 어려운 작업

이었습니다. 이후<한글 파동>사건이 일어나자 다시 연희대학교의 교수로 돌아와 연구생활을 합니다. 


이 기간 동안 그의 저서가 여러 발표되었는데요  

[우리말 존중의 근본 뜻](1951), [한글의 투쟁](1954), [나라사랑의 길](1958), [나라 건지는 교육](1963), [한글

만 쓰기](1970) 등으로, 한글 전용, 우리말 다듬기, 나라 사랑, 국어교육 등에 관한 주장을 펴내 국어 발전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그리고 [우리말본]에 짝할 우리의 옛말 문법책을 집필하던 중 1970년에 작고하

십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로를 인정하여 1962년에는 건국공로훈장을, 1970년에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

였습니다.

오늘 외솔 최현배 선생님 기념관을 돌아보며

우리가 편하게 쓰고 있는 한글이 우연히 얻어진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학자들의 연구와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세계적으로 우수한 문자로 인정받고 있는 한글 

피와 땀으로 지키고 이뤄낸 우리의 한글을 앞으로 더욱 사랑하여야겠습니다. 



외솔최현배선생기념관 

주소: 울산광역시 중구 병영12길 15

전화: 052-290-4828

관람시간: 09:00~18:00

휴관:1월 1일, 월요일, 명절(추석, 설날) 당일

 


Posted by 정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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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nyj0772.tistory.com BlogIcon 윤지윤지 2018.05.14 09: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2. Favicon of https://blog.ulsan.go.kr BlogIcon 명품서진 2018.05.17 20: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현배 선생님에 대해 많은거 알고 계신 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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