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사람들의 귀에 이처럼 낯익은 멜로디는 없을 것입니다.
단순하면서도 애절하게 아름다운 이 환상적인 소네트는 200년 동안 사람들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게끔 해준 명곡 가운데 명곡입니다. 처음 시작부의 그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발산한 뒤 공기 속으로 사그러지듯 마무리되는 이 곡은 무척이나 간결하고 짧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와 역사적인 배경은 비장하다 못해 미스터리합니다.



 지금은 분실된 자필악보에는 작곡가가 직접 ‘엘리제를 위하여’가 아니라 ‘테레제를 위하여’라는 제목을 적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데요. 이 곡은 1810년 초에 두 명의 백작 영애로부터 사랑을 거절당한 베토벤이 새롭게 결혼하고자 마음먹었던 18세의 테레제 말파티(Therese Malfatti)를 위해서 작곡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물론 거친 성격과 형편없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던 베토벤은 단호히 청혼을 거절당합니다.

 작품의 명칭이 ‘엘리제’로 굳어진 것은 1867년 초에 처음으로 이 작품을 출판한 루트비히 놀이 친구 브레들의 집에서 베토벤 자필 악보를 보며 단지 글자를 잘못 읽었기 때문인 것으로 봅니다. 브레들은 이보다 앞서 이 자필악보를 테레제 말파티로부터 선물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테레제 말파티가 베토벤의 ‘엘리제’였을까요? 이에 대한 정확한 증거는 남아있지 않지만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테레제인 확률이 높았을 뿐이라고 합니다.

 다른 가설도 존재합니다. 베를린의 음악학자 클라우스 마르틴 코피츠(Klaus Martin Kopitz)는 엘리자베스 뢰켈(Elisabeth Roeckel)이라는 여인이 바로 ‘불멸의 연인’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요.

 베토벤보다 23살 어린 엘리자베스 뢰켈은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에서 주인공인 플로레스탄 역을 맡았던 조세프 뢰켈의 여동생입니다. 그녀는 1814년 3월 9일 첫째 아이의 세례기록에 자신의 이름을 엘리자베스가 아닌 ‘마리아 에바 엘리제’라고 기록했습니다. 이 증거가 바로 [엘리제를 위하여]의 그 이름과 동일하다는 것이죠. 이후 1810년 엘리자베스가 빈으로 떠나게 되면서 그녀와의 추억을 그린 것이 이 작품이라는 가설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자필악보가 발견되지 않는 한 확신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이렇듯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질 수 없는 많은 가정과 의문을 가지고 있는 이 작품에는 단 하나의 진실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베토벤의 저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샘솟은 사랑에 대한 가장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

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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