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기자] 문화가 있는 날 대곡박물관 행사 - 역사 따라 걷는 태화강
누리 GO/블로그기자2018. 4. 4. 08:30

 

울주군 가지산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동으로 흐릅니다. 울주를 통과하고 대암호와 사연호와 만나지요. 다시 울산 시내 중앙을 통과하여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를 지나 마침내 동해에 도착합니다. 이 물줄기의 이름은 "태화강"입니다. 봄을 맞이하여 이 태화강을 따라 울산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았습니다. 



▲ 달이 숨는다는 봉오리, "은월봉". 


태화강의 역사는 울산의 역사라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봄기운이 완연한 3월,  문화가 있는 날을 맞이한 대곡박물관의 행사는 ""봄날 태화강변을 걸으며 만나는 울산 역사"입니다. 태화강 전망대에 시작된 일정은 은월봉을 지납니다. "달이 숨는 봉오리"란 뜻이지요. 




▲ 장춘오는 어디쯤일까? 팔경을 따라 걷는 여정. 


울주팔경은 고려시대 문인인 설곡 정포가 꼽은 울산의 명승입니다. 태화루 주변의 팔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용금소 벼랑 위에 있었던 누각 '태화루(太和樓)', 지금은 사라진 '평원각(平遠閣)', 태화강 건너 달빛이 숨는다는 봉우리 '은월봉(隱月峰), 꽃과 풀이 자라 봄이 숨은 언덕이라 부르는 '장춘오(藏春塢)'입니다. 



울산의 명문가가 지켜낸 이휴정. 

달이 숨는 언덕이라니,,, 밤 풍경이 빼어났던 모양입니다. 이제 이휴정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이휴정은 울산의 명가 학성 이씨가 보존하고 있는 울산의 보배입니다. 동헌 앞 있었던 2층 누각은 울산 최초의 도서관으로 쓰였던 건물입니다. 일제에 의해 매각된 것을 학성 이씨 문중이 사들여 지금의 모습으로 보존한 것이지요. 



▲ 십리대밭교를 건너 태화강 북쪽으로,,,


십리대밭교를 건너 태화강 북쪽으로 향합니다. 태화강가의 대숲은 장관이지요. 대나무숲이 십리나 이어진다 하여, "십리대숲"이라고도 하고, 촘촘히 자라난 대나무가 마치 밭을 보는 듯하다고 하여 "십리대밭"이라고도 합니다. 십리대밭교는 지역기업이 울산시에 기증하는 형식으로 지어진 다리이지요. 



▲ 윤지태 부사 선정비. 


동강병원 벽면에는 "윤지태 부사 선정비"가 있습니다. 이 또한 사연이 긴 이야기입니다. 조선 영조 때 울산부사였던 윤지태는 백성들에게 선정을 배풀었습니다. 그가 떠나갈 때 울산의 백성들은 선정을 기리는 선정비를 만들었지요. 후에 도로를 만들다 깨진 바위를 동강병원 벽에 붙여 오늘에 전하게 되었습니다. 



▲ 태화루에서 쉬며, 옛 사람들의 시를 감상한다. 


태화루에서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태화루, 태화동, 태화강,,,, 울산 곳곳에 붙여진 이 태화(太和)란 이름은 신라시대 태화사에서 유래합니다. 신라 선덕여왕 12년인 서기 643년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던 자장국사가 태화사를 울산에 건립하지요. 




▲ 대숲 속은 한낮인데도 어두울 정도이다. 


태화사에 딸린 누각이 태화루, 태화사 앞을 흐르는 강이 태화강이 된 것이지요. 구한말 행정구역을 개편하며 동네 이름을 정할 때, 태화루가 있던 동네 이름이 "태화동"이라 명명합니다. 태화사는 사라졌지만, 태화루는 복원되었습니다. 그 옛날의 역사는 오늘로 이어집니다. 



▲ 박취문 선생이 은거하던 만회정. 


다시 십리대밭 안을 걸어 만회정에 도착합니다. 만회정은 조선 중기의 무인이었던  박취문 선생이 관직을 던진 후, 다시 고향인 울산에서 풍류를 즐기기 위해 세운 정자입니다. 1600년대 말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하며, 조선말기에 소실된 것을 다시 복원한 것이지요. 정자 앞뒤로 대숲이 있고, 바로 앞은 관어대란 낚시터가 있었다 전합니다. 

 


▲ 나룻배로 태화강을 건넌다.

 

다시 시작점인 태화강 전망대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의 일정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신라부터 시작된 태화강의 역사는 고려와 조선을 거쳐 오늘로 이어집니다. 그 옛날 달이 숨었다는 봉오리는 복원된 태화루 앞에 여전히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배로 건넜던 강을 다리로 걸어서 건넌다는 차이 정도입니다.  태화강을 따라 거니는 역사기행을 떠나보시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