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에서 고헌산과 오두산 사이 을밀로를 타고 올라갑니다. 남하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멀리 서쪽으로 펼쳐진 가지산 풍경이 보이지요. 이곳이 바로 석남사 자리입니다. 가을이면 붉은 단풍으로 온통 물들어 아름다움을 뽐내는 곳이지만, 아쉽게도 단풍철은 지났습니다. 



▲ 석남사 들어가는 곳의 승탑들. 


석남사는 신라의 고찰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신라 현덕왕 때, 도의국사가 석남사를 창건했다고 합니다. 서기로 따지면 824년의 일이지요. 천년하고도 백구십삼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의 흔적 역시 절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데, 신라 양식 그대로의 석탑이 그것입니다. 



▲ 계곡에 놓인 돌다리를 건너 석남사로,,,


도의국사는 중국으로부터 선종을 도입했다고 전합니다. 지금이야 선,교 양종이 모두 익숙하지만, 당시만 해도 선종은 새로운 기풍으로 혁신적이라 평가받을 정도였지요. 가지산 자락, 좋은 터를 찾아 석남사를 만들 당시 도의국사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 석남사 대웅전. 


석남사를 한 바퀴 돌아봅니다. 돌로 만든 석탑과 수조가 신라와 고려의 유물이지만, 이곳의 건물들은 근대 이전에 복원된 것입니다. 이는 잦은 전화 때문에 그러합니다. 임진왜란 때 건물이 소실되어 언양현감이 복원하였고, 한국전쟁 때 건물이 소실된 것을 1957년부터 복원한 것이지요. 



▲ 대웅전 앞 삼층석탑. 

 

이곳을 찾으면 꼭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대웅전 앞 당당하게 서 있는 삼층석탑, 아직도 쓰고 있는 고려시대의 수조, 가장 안쪽에 모셔져 있는 승탑이지요. 승탑은 도의국사의 사리를 모셨다고 전합니다. 전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도의국사는 석남사를 건립하고 이곳에서 열반에 든 것이지요. 

 


▲ 돌로 된 수조.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돌로 만든 수조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금이야 합성수지로 쉽게 만들지만, 예전에는 물건을 만드는 재료가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목재로 물통을 만들면 쉬이 부서지니, 석공이 돌을 깎아 수조를 만든 것이지요. 수조의 크기가 이 정도 된다는 것은 그만큼 석남사의 규모가 당시에도 컸다는 의미이지요. 



▲ 천년의 세월을 견딘 석탑.

▲ 천년의 세월을 견딘 석탑. 


석남사를 한 바퀴 돌아봤습니다. 마지막은 이 절에서 가장 신성한 공간으로 갈 차례입니다. 이 절을 창건한 도의국사의 사리가 묻힌 곳이지요. 바로 석남사 승탑입니다. 승탑은 부도라고도 부르는데, 스님이 입적한 후 사리를 모신 일종의 탑입니다. 



▲ 석남사 부도를 보기 위해 가는 길


도의국사는 선덕왕 5년에 당으로 가는 사신을 따라 신라를 떠나게 됩니다. 당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생명을 걸고 바다를 건넌 것이지요. 오대산에서 수행을 했다고 하는데, 자장율사 역시 이곳에서 불법을 닦은 인연이 있습니다. 




▲ 도의국사의 사리탑으로 전하는 부도. 


도의국사의 승탑은 석남사의 가장 북쪽에 자리합니다. 석남사의 동과 남은 계곡으로 막혀 있습니다. 다리를 건너 남쪽의 대웅전을 거쳐야 이곳에 올 수 있지요. 사실상 가장 깊숙한 곳이자 내밀한 곳입니다.  도의국사가 입적한 후, 그분의 제자들은 승탑을 이곳에 모셔 떠난 스승에 대한 예를 표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수조 안 쌓인 동전들. 


가지산 자락, 천년의 세월을 견딘 석남사를 돌아봅니다. 이제 겨울이 시작되었습니다. 겨울의 가지산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풍경을 자랑합니다. 쓸쓸하지만, 봄을 기다리는 풍경은 아름답습니다. 천년고찰 석남사를 거닐며 생각에 잠겨봅니다. 

 

 


 





Posted by Tel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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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blog.ulsan.go.kr BlogIcon 유정숙 2017.12.15 17: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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