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포는 고려시대의 시인이었습니다. 고려 충선왕 복위 원년인 서기 1309년 태어나, 충목왕 3년인 서기 1347년에 세상을 떠났지요. 문과에 급제해 좌사의대부 벼슬을 지냈으나, 3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죽음은 당대의 대학자였던 이제현과 이색 등이 슬퍼했다고 전합니다. 



▲ 태화루 전경. 


 정포와 울산의 인연은 유배로 시작되었습니다. 울주로 유배 온 정포는 울산의 여러 명승지를 돌아보고, 그 감흥을 시로 남깁니다. 그가 꼽은 "울주팔경"은 아직까지 울산의 명승지를 소개하는 글마다 언급되곤 하지요. 태화루를 방문한 시인의 감흥 또한 시로 생생하게 묘사되지요.  




▲ 복원된 태화루, 그 옛날 이곳은 시인 정포가 찾아 시를 지었다. 


 정포가 뽑은 팔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태화루(太和樓)'와 태화루 근처에 있었던 누각 '평원각(平遠閣)' 태화강의  달빛이 숨는다는 봉우리 '은월봉(隱月峰), 봄이 숨는다는 언덕 '장춘오(藏春塢)', 망해대(望海臺)', '벽파정(碧波亭), '백련암(白蓮巖)','개운포(開雲浦)' 입니다.



▲ 태화루 기둥 사이로 태화강의 풍경이 보인다. 


붉은 난간은 관도에 닿아있고, 절 문 밖에는 푸른 파도가 넘실대네.   


 태화루의 난간 아래는 옛 길이 닿아 있습니다. 태화루 누각 바깥으로는 태화강의 물결이 넘실댑니다. 여기서 "절"이라 함은 옛 태화사를 말합니다. 정포가 태화루를 방문했을 때, 아직 태화사는 그 모습이 남아 있었습니다. 



▲ 넘실대는 태화강의 물결. 


수레들은 시끄럽게 돌아가는 행차를 전송하고, 노래 소리 풍악소리는 날마다 요란하구나. 


 다음 구절은 소리를 묘사합니다. 거창한 행차를 전송하는 소리로 태화루 바깥은 한바탕 소동이 벌어집니다. 노래 소리가 들리고, 풍악 소리가 요란합니다. 나그네의 시름은 깊어지지요. 



▲ 붉은 난간은 관도에 닿아 있고,,,,


이슬비 내리니 나무에서 꽃이 피고, 봄바람 불어오니 술독엔 술이 가득. 


 계절은 봄입니다. 이슬비가 내리지만, 비는 봄꽃을 적십니다. 태화강에서는 봄바람이 불어오고, 나그네 시름을 달래줄 술은 술독에 가득하지요. 



▲ 저 멀리 보이는 고층빌딩이 이채롭다. 

 

고금의 이별 한에 지는 달빛 으스럼하고, 


 개경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는 것일까요? 시인은 달이 뜨는 밤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으스럼한 달빛을 보며 개경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를 그리워합니다. 



▲ 노래 부르던 어부들은 간 곳 없다.  


부들 노래소리는 앞 마을에서 들려오네.


 어디선가 어부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여기서 어부라 함은 태화강에서 민물고기를 낚는 뱃사람들을 말하지요. 잠시 상념에 잠겼던 시인은 어부의 노랫소리로 다시 현실로 돌아옵니다. 


 

▲ 울산홍교를 세운 이참봉을 기리는 영세불망비. 


 어떠신가요? 그 옛날 태화루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복원된 태화루의 모습 역시 다를 것 없어 보입니다. 수레들이 시끄럽던 행차소리는 자동차 소리가 되었고, 태화루에서 어부들의 모습 대신 태화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보인다는 차이 정도일까요? 




▲ 옛 시 따라 태화루를 돌아보다. 


 젊은 시인은 자신의 그리움을 시로 승화시켰습니다. 정포의 시는 오늘에 전해, 그 시절 태화강과 태화루의 모습을 마치 손에 잡힐 듯 그려줍니다. 700년 전의 옛날이지만, 변하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태화강의 풍경을 보며, 떠난 집을 그리는 나그네의 마음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

 

 

 






Posted by Tel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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