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기자] 이 땅에 농업이 뿌리 내린 역사 - 약사동 제방유적 전시관
누리 GO/블로그기자2017. 5. 31. 08:30


제방이란 강, 바다, 호수 주위에 쌓은 둑을 말합니다. 주로 홍수를 방지하거나 가뭄이 들었을 때를 대비해 물을 모으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되지요. 이를 치수(治水)라고 합니다. 여기, 1, 300년 전 우리 조상들이 치수를 했던 유적이 있습니다. 



▲ 5월 24일 개관한 약사동 제방유적전시관. 


지금도 그렇지만, 제방은 쉽게 쌓을 수 있는 구조물이 아닙니다. 공사가 엄청나기에 들어가는 예산 또한 어마어마합니다. 국가가 건설하는 국책사업으로 선정되어 엄청난 인력과 자금이 투입되어 시간을 들여 지어야 합니다. 1,300년 전, 그 옛날에는 더욱 힘들었겠지요. 



▲ 전시관에 들어가면 제방의 단면이 한 눈에 들어온다. 


5월 24일, 약사동 제방유적 전시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제방유적 전시관은 보통의 유적 전시관과는 다른 구조를 가졌습니다. 겉은 옛 제방과 같은 모양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한쪽 벽은 제방의 단면을 볼 수 있습니다. 제방 안에 들어가 제방의 단면을 보는 것이지요. 



▲ 1,300년 전 흙을 다져 만든 제방. 


바닥을 평평하게 고르고, 그 위에 흙을 쌓아 다집니다. 단단하게 다지기 위해 조개껍데기 같은 것을 넣기도 하고,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를 넣습니다. 말은 쉽지만 물을 막을 제방이라면 엄청나게 단단해야 합니다. 기계를 쓸 수 있는 지금도 쉽지 않은 일. 이 제방이 건설된 1,300년 전에는 사람의 손으로 해야 했습니다. 



▲ 흙을 단단하게 다지기 위해 조개 껍질을 이용했다. 


완성된 제방의 규모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길이가 155m, 폭은 짧은 쪽이 25m, 긴 쪽이 37m입니다. 발굴 당시의 높이는 8m였으나, 이는 세월의 흐름으로 깎여나갔기에 더 높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재에도 농업용수 저수지로 한정하면 이 정도 규모의 제방은 큰 편에 속합니다. 



▲ 전시실 전경. 


약사동 제방 유적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이 정도 규모의 제방이 지어졌다면, 대규모의 농업용수가 필요했다는 뜻입니다. 출토된 유물로 추정한 연대는 1,300년 전의 일이지요. 그 당시에 이미 울산 약사동 일원에는 대규모의 농경지가 자리하고 있었었습니다. 



▲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물을 대던 기구, 무자위. 


구영제, 회야제, 서제, 대천제, 태화제, 어인제,,,,, 기록에서 확인되는 울산 곳곳에 있었던 제방의 이름입니다. 약사동 제방뿐 아니라 울산 곳곳에는 많은 제방이 있었습니다. 농사는 가을에 많은 수확을 보장하지만, 그 과정이 힘들지요. 사람들은 집단을 이뤄 함께 작업하는 방법을 택합니다.  



▲ 제방유적 전시관을 찾은 아이가 제방쌓기 체험을 하고 있다. 


파종을 하고, 논을 가는·논갈이를 합니다. 모를 논에 심는 모내기를 하고 가끔·논매기를 하지요.. 가을에 수확하는 추수까지,,, 노동에 노동을 하는 힘든 일상이지요. 농부들이 집단을 이뤄 일을 한 방식은 지금도 전해집니다. 바로 서로와 서로를 돕는 방식 "품앗이"입니다. 



▲ 약사동에서 출토된 유물 - "언양인수부" 관청이름이 선명하다. 


1,300년 전, 약사동의 사람들은 분주했습니다. 제방을 쌓게 위해서이지요. 이 정도 규모의 제방이라면 관청이 주도했을 것입니다. 약사동 제방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다른 제방을 쌓은 기록으로 추정할 수 있지요. 둑을 쌓아 모인 물은 풍요로운 수확을 보장했기에 사람들은 힘껏 제방을 쌓았습니다. 



▲ 그 옛날 수확에 쓰인 돌낫 유물. 


계단을 내려가 제방을 뚫은 전시관으로 들어갑니다. 이는 1,300년 전 과거로 돌아가는 행위입니다. 이 땅에 농업이 뿌리내린 역사와 마주하는 것이지요. 약사동 제방 유적전시관에서 그 옛날 약사동에 살았던 조상들의 역사와 만나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