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동을 걸어 다니다 우연히 모르는 골목길로 들어가 만나게 된 청춘 고복수길

처음에는 이름이 참 특이하다 생각만 했는데 이내 관심을 갖고 천천히 다시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지도에 표시된 파란길이 전부 고복수길인데 그 길이가 꽤 길었습니다.


저도 성남동을 자주 다녔지만, 관심 있게 살펴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여기저기 곳곳에 고복수 악단의 사진과 동상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곳곳에 있는 사진과 동상을 보니 도대체 고복수라는 분이 누굴까 더욱 호기심이 가서 고복수길을 따라다녀보기로 했습니다.

 

 

 

  

古고복수

콜럼비아사 주최 전선(全鮮)아홉도시콩쿠르대회의 부산대회에 출전해 1등으로 입상했고, 그 뒤 1932년 콜럼비아 레코드사가 동아일보사의 후원으로 전국신인남녀가수 선발대회에서 3위로 입상했다. 1934313일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 라디오에 출연하였다.그가 취입한 "가로수에 기대여"를 포함한 70여 곡의 유행가는 오케음반에 전하고, 그가 오케음반에 취입한 "인생이란 무엇"三千里(1935) 711호에 소개됐다. 1930년대 고복수는 빅타음반에 유행가 여섯 곡을, 그리고 오케음반에 44곡을 취입하였다. 광복 후 동화예술학원(東和藝術學院)의 원장을 지내며 대중음악 발전에 이바지하였다-한겨레음악대사전 일부 발췌-

 

그는 울산 출생으로 울산을 노래한 가수였습니다.

대표곡 타향살이가사를 보니 고향 울산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가사 속에서 절절히 묻어납니다.

 

 

  

 

19403월에 조직된 반도악극좌(半島樂劇座)에 가입한 후 1941년 그를 가수로 출세시켜준 손목인과 함께 어트랙션 쇼단을 조직해 일본의 재일동포를 위해 순회공연을 했다고 합니다그래서 고복수길 곳곳에 그가 이끌던 악단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성남동 고복수길을 거닐면서 그가 발자취들을 하나씩 따라다녀보니 울산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가수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더불어 저도 울산에 더 큰 애정이 샘솟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성남동에 가시면 울산을 사랑하고, 울산을 노래한 고복수길을 거닐면서 숨겨진 울산의 가수가 누가 있는지 찾아보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Posted by 서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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