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어떤 여행계획 세우고 계신가요? 날씨도 화창할 이번 주말에는 울산 여행 한 바퀴 하시는 건 어떨까요? 10월부터는 울산시티투어가 울산을 누비고 다닐 예정이라 저렴하고, 편하게 울산을 여행하실 수 있어요!! 그렇다면 울산누리와 함께 수요일 여행코스를 미리 가 볼까요?

<시티투어 여행정보>


운행시간

10:00 ~ 16:30

이용요금

성인 5,000원 소인 및 청소년 3,500원

준비물

간소복,운동화,필기도구 등

승차권 구매

울산시티투어 홈페이지 예약

설명

울산 햇빛광장 > 현대자동차 > 대왕암공원 > 현대중공업 > 외솔기념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총 부지 약 500만㎡ 규모에 단일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연간 160만대의 자동차 생산능력을 갖춘 곳이다. 이곳은 하루평균 5,600여대를 생산하고 있으며 수출전용부두에는 약 1만 여대의 자동차들이 줄지어 있어 이 또한 멋진 관광코스랍니다.



 산책이 즐거운 숲 그늘과 기암괴석 해변을 끼고 있는 동구 일산동의 대왕암공원은 도심 속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귀한 휴식처입니다. 925천㎡에 달하는 산뜻한 공간을 가진 이 공원 옆에는 울퉁불퉁한 바위해변을 보고 놀란 가슴을 진정 시킬 수 있는 일산해수욕장의 모래밭이 펼쳐져 있어 더욱 좋습니다. 우리 나라 동남단에서 동해쪽으로 가장 뾰족하게 나온 부분의 끝지점에 해당하는 대왕암공원은, 그래서 동해의 길잡이를 하는 울기등대로도 유명한데요. 공원입구에서 등대까지 가는 길은 600m 송림이 우거진 길로 1백여년 아름드리 자란 키 큰 소나무 그늘 덕에 시원하고 아늑함을 느껴집니다.


 송림길을 벗어나면 탁 트인 해안 절벽, 마치 선사 시대의 공룡화석들이 푸른 바닷물에 엎드려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거대한 바위덩어리들의 집합소입니다. 불그스레한 바위색이 짙푸른 동해 바다색과 대비되 선명한 첫인상을 주는 곳이죠. 곧장 마주 보이는 대왕암은 물에서 떨어져 나가려고 몸부림치는 용의 모습 그대로 입니다. 점점이 이어진 바위를 기둥 삼아 놓여진 철교를 건너면 대왕암에 발을 딛고 설 수 있습니다. 댕바위 혹은 용이 승천하다 떨어졌다 하여 용추암이라고도 하는 이 바위는 신라 문무왕의 호국룡 전설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왕의 뒤를 이어 세상을 떠난 문무 대왕비가 남편처럼 동해의 호국룡이 되고자 이 바위로 바다에 잠겼다는 것이죠. 대왕암 외에도 괴이하게 생겼다 하여 쓰러뜨리려다 변을 당할 뻔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남근바위, 탕건바위, 자살바위, 해변 가까이 떠 있는 바위섬, 처녀봉등이 꽉 채웁니다.


 기암 해변의 오른편으로는 500m 가량의 몽돌밭이 펼쳐져 바위 해안의 멋스러움을 더해 줍니다. 공원을 한바퀴 돌고 북쪽 등성이를 넘어 계단길을 내려가면 바로 일산해수욕장을 만납니다. 동해안답게 자갈 섞인 거친 모래밭이지만 1㎞ 달하는 길이가 멀찍이 그어진 수평선과 함께 해수욕장 걷는 맛을 자아내는데요. 특히 울기등대가 있는 육지에서 보는 풍경도 멋지지만 배를 대절해서 바다에서 조망하는 바위형상은 가히 절경입니다.  방어진항에서 2㎞ 정도 내달리면 기암과 해송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는 또 다른 작은 울기등대를 만납니다. 울산은 지도상으로 보아 동해 남단의 돌출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특히 울기등대는 이 돌출한 끝부분에 해당합니다.

 


 현대중공업은 조선소 건립과 동시에 26만톤급 유조선 2척을 동시에 건조하여 세계 조선사에 유래없는 기록을 갖고 있으며, 지금가지 1,170여척의 대형선박을 건조한 세계 최대의 선박건조 회사입니다.  또 전세계 선박 건조량의 15%를 생산하는 현대중공업은 세계 최대 100만 톤급 도크와 900톤급 골리앗 크레인 등 어마어마한 시설규모에 입이 쩍 벌어질 정도입니다.

 

이곳은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선생(1894∼1970)의 생가터이다. 건물은 이미 없어졌으나 2008년 복원 되었다. 선생은 여기에서 태어나서 병영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7세에 서울의 경기중·고등학교로 진학할 때까지 여기에서 살았습니다. 1910년 선생은 주시경(周時經: 1876∼1914)이 운영하던 조선어강습소에 다니며 우리 말과 글을 지키고 가르치는 일이 나라를 되찾는 길임을 깨닫고 평생을 이 일에 바칠 것을 결심하였다. 선생은 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와 교토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등에서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데에 전념하였으며, 조선어학회사건으로 3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광복 후에는 문교부 편수관, 학술원 회원, 한글학회 이사장, 세종대왕 기념사업회 대표이사, 연세대학교 부총장 등을 역임하면서 나라사랑의 정신과 겨레의 얼을 되살리는 일에 헌신하였던 곳입니다.


『조선민족 갱생의 도』,『우리말본』,『한글의 바른길』,『한글갈』,『한글의 투쟁』,『고등말본』,『중등말본』,『나라사랑의 길』등 많은 책을 썼다. 돌아가신 뒤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 받았습니다.

 

 

 

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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