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암", 해석하자면 "대왕의 바위" 정도로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울산의 대왕암은 바위섬입니다. 동해에 있는 이 섬은 전체가 하나의 바위로 다리로 연결되어 있지요. 근처 풍경이 절경이라 사람들은 대왕암까지 다리를 건너 산책을 다니곤 합니다. 



▲ 바위 위 뿌리내린 해송. 


대왕암의 전설이 시작된 것은 신라 문무왕 때의 일입니다. 문무왕은 신라 제 30대왕으로,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아들입니다. 문무왕의 어머니는 삼국통일의 영웅 김유신 장군의 동생이니 조카가 되지요. 삼국통일의 기틀을 만든 것은 무열왕 때의 일이나, 완성된 것은 문무왕 시대입니다. 



▲ 한 가족이 평화롭게 대왕암의 풍경을 즐기고 있다. 


백제와 고구려와의 전쟁이 끝났지만, 한반도에 평화는 오지 않았습니다. 당나라는 한반도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 다시 전쟁이 벌어진 것이지요. 당나라는 파견된 신라사신 김양도를 억류하여 죽을 때까지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이유 역시 어거지에 가깝습니다. "신라가 백제 땅과 백성을 차지하였다."



▲ 바위 위에서 잠시 쉬고 있는 갈매기. 


역사에서 "나,당 전쟁"이라 부르는 신라와 당나라의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서기 670년인 문무왕 10년에 시작된 전쟁은 676년에서야 끝이 나게 됩니다. 한반도에서 당나라 군사는 물러가고, 6년간 한반도 곳곳에서 계속된 전쟁은 마침내 끝이 나게 되었습니다. 



언덕 위 등대.


대왕암의 전설이 탄생한 것은 문무왕의 죽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나,당 전쟁이 끝난지 5년이된 서기 681년, 문무왕은 56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습니다. 문무왕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신문왕은 문무왕을 위한 절을 지었고, 그 유해는 화장해 절 동쪽 바다 바위에 뿌렸지요. 



▲ 기암괴석은 동해의 파도와 바람이 만든 자연의 걸작이다. 


이것은 모두 문무왕의 유언에 따른 행동이었습니다. 신문왕이 문무왕을 지은 절이 바로 감은사이고, 유해를 화장해 뿌린 곳은 경주 바다의 문무대왕릉입니다. 이것은 죽은 후에도 고국 신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이라고 전설은 말합니다. 



▲ 다리를 통해 대왕암까지,,


"죽은 후,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키겠으니 유해를 바다에 뿌려달라." 이것이 문무왕이 남긴 유언의 요지입니다. 불교를 숭상한 신라인들은 전생을 믿었습니다. 죽은 후까지 신라를 지키겠다는 대왕의 기개는 기록되어 남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을 것입니다. 



▲ 멀리 북쪽으로 현대중공업이 보인다. 


울산의 대왕암 전설은 여기서 하나의 이야기가 추가됩니다. 문무왕의 왕비가 승하할 때의 이야기지요. 문무왕의 왕비 역시 대왕을 따라 용이 되었다고 합니다. 왕비가 잠든 것은 바로 울산 동구의 대왕암입니다. 동해안에는 "대왕의 바위"가 두 군데 있습니다. 문무대왕릉 역시 대왕암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 옛 전설이 어린 대왕암공원. 


남편 문무왕이 잠든 "대왕암"과 아내 왕비가 잠든 "대왕암"은 경주와 울산에 나뉘어 있습니다. 직선거리로는 27㎞입니다. 그 옛날 신라시대 울산은 경주의 외항 역할을 했습니다. 전설은 전설일 따름이지만, 신라시대 울산이 신라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곳이었나 하는 것을 보여주지요. 



▲ 대왕암 산책에는 편한 운동화가 필수. 


역사에 관심이 없는 분이라도, 대왕암 공원은 멋진 산책코스입니다. 아참,,, 고양이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이곳에서 애교 많은 고양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낚시꾼들이 잡은 물고기를 받아먹으며 사는 고양이들이 많은 탓입니다. ^^









Posted by Tel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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