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3월은 여러분에게 어떻게 다가오나요?


꽃 피는 봄이 왔듯이 대한민국에도 큰 변화가 왔는데요. 1919‘3.1 만세운동이 있었다면, 2017년엔 촛불이 이런 모습을 잘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민족 독립을 위해 싸웠던 한 분을 소개할까 합니다. 그분은 바로 박상진 의사입니다. 모든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할 만큼 나라를 독립시키려고 힘쓴 그의 삶 속으로 함께 가시죠!

 


박상진 의사 생가

 

박상진 의사는 누구?


경상남도 울산 출생한 그는 20대에 판사시험 합격할 정도로 미래가 촉망받는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1910년 국권피탈 이후 그의 180° 달라졌는데요. 평양법원에 발령받았으나 사퇴하고 독립운동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1913년 조선국권회복단, 1915년 광복회 결성 등 조국 광복을 위해 꾸준한 항일 투쟁을 했으며 장승원, 양재학, 서도현 등 사살하는 등 친일파 근절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1918년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오는 길에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192138세의 젊은 나이로 대구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런 그의 비장한 삶을 울산시에서는 잊지 않았는데요. 박상진 의사 추모비, 동상, 생가 등을 통해서 후손들이 그의 호국정신을 이어가도록 했습니다.


특히 생가는 박상진 의사가 모든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해 집안은 몰락하였는데요. 집 역시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갔으나 2002년 울산시가 매입하여 2007년 복원 정비 사업을 완료해 20081월 울산 시민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박상진의사 전시관

 

지난해(2016) 8월 생가는 다시 한번 더 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전시관을 재단장했는데요. 이를 통해 관람객이 좀 더 쉽게 박상진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전시관은 박 의사의 생애와 활동 등을 주제로 3개 구역으로 구성됐습니다각 주제는 박 의사의 출생과 성장을 보여주는 '불씨를 피우다', 독립운동 활동을 보여주는 '의로운 횃불이 되다', 독립운동 정신을 보여주는 '독립의 불을 밝히다' 등으로 나눌 수 있었는데요. 당시 상황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영상물이 눈에 띄네요. 과거 글뿐인 전시관에서 많은 변화가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기념비, 박상진 의사 동상

 

이외에도 생가 입구에는 기념비와 함께 박상진 의사 동상이 있어 관람객에게 또 다른 추억을 전해 줍니다. 벤치에 앉아 박상진 의사의 모습에서 여유로움, 친근함이 느껴지는 건 어떤 이유일까요? 아마 광복된 대한민국을 보고 있어서가 아닐까요?


 

 

안채-박상진 의사 초상화, 전별시, 옥중절명시가 나란히 걸려있다

 

! 전시관을 나와서 이 집을 한 번 돌아봅니다.


사랑채, 안채 등 모두 6동의 건물이 자형 구조를 띄는 것이 조선 후기 양반 살림집의 모습입니다. 안채는 박상진 의사를 기억하는 듯 그의 초상화와 함께 전별시, 옥중절명시가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마치 당시 그의 상황, 마음을 잠시나마 이해하기 해줍니다.


 

 

이상 박상진 의사 생가를 통해 치열했던 그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는데요.


한편으로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닌가 싶네요. 대한민국 현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나날을 겪고 있습니다. 부디 애국, 애민 정신으로 바른 대한민국을 이끌 지도자가 나타나길 기대해봅니다!

 



 

- 안 내 -

 

1. 위      치 : 울산광역시 북구 박상진길 23(송정동)

2. 관람 시간 : 10:00~17:00

3. 휴  관  일 : , 화요일, 추석, 설연휴는 휴관

4. 문  의  처 : 울산광역시 북구청 문화체육과(052-241-7333)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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