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 잠든 고려영웅 - 김취려 장군 묘소를 찾는 산행


언양 화장산은 언양의 주산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해발 271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산 위에 오르면 언양이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산 아래에서는 부분만 볼 수 있었던 언양읍성의 전체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도 화장산에서만 가능한 조망이지요. 



▲ 화장산 중턱에 있는 돌탑. 등산객들이 하나씩 쌓은 돌맹이가 탑이 되었다. 


화장산에 오른 것은 고려의 옛 영웅이 묻힌 묘소에 가기 위해서입니다. 등산로에 따라 여러 갈래 길이 있지만, 일단 굴암사 쪽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초행인 분들은 등산을 하시는 분께 물어도 좋고, 산 곳곳에 있는 이정표를 확인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 굴암사 가는 길. 


김취려 장군과 언양의 인연은 선조 때부터 시작됩니다. 김취려 장군은 언양 김씨입니다. 신라 경순왕과 후비인 효목왕후 사이에 김선이 태어났고, 그는 고려에 귀순해 언양군에 책봉됩니다. 이후 그 후손들이 언양에 터를 잡고 살아가게 되지요. 바로 오늘날의 언양 김씨인 것입니다. 



▲ 저 멀리 김취려 장군묘가 보인다. 


김취려 장군이 바로 이 언양 김씨입니다. 언양 김씨의 시조 김선으로 따지면 8세손이 되지요. 그가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급변하게 돌아간 국제정세 때문이었습니다. 거란과 여진, 몽골,,, 중국의 북방에 살던 기마민족들은 세력이 격변하던 시기였지요.  



▲ 옛 비석. 안타깝게도 아래쪽은 파손되었다. 


칭기스칸이 등장하고, 그는 몽골을 하나로 통합합니다. 이로써 초원의 세력판도는 요동치게 되지요. 중국 북방은 여진 족이 주축인 금나라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다스림을 받던 옛 거란 족과 몽골을 연합하게 됩니다. 



▲ 비석에 새겨진 김취려 (金就礪) 이름 석 자가 선명하다. 


금나라가 멸망한 후, 다시 몽골과 거란은 대립합니다. 눈 앞의 적이 없어졌으니, 어제의 협력 관계는 다시 틀어지게 된 것이지요. 거란이 세운 나라는 대요수국이란 나라였고, 이를 후연이라고도 부릅니다. 문제는 거란족에 고려의 국경을 침입하여 약탈하고 고려 백성들을 괴롭혔던 것이지요. 



▲ 김취려 장군묘 전경. 


김취려 장군이 활약한 시기는 이러한 시대였습니다. 거란족은 몽골족에 쫓겨 고려의 서북면으로 넘어와 자신들의 세력권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여진족, 거란족, 몽골족이 얽힌 초원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한 판 전쟁은 이제 국제전이 되었습니다. 서북을 뺏길 수 없었던 고려 역시 이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지요. 



▲ 근래 일어난 화재로 화장산 김취려 장군묘 부분의 숲은 사라졌다. 


고려 고종 3년, 거란의 금산왕자가 병사를 이끌고 고려의 땅을 침범했습니다. 김취려 장군은 이를 격퇴하였게 됩니다. 누구보다 용감하게 싸워 고려를 지켜낸 것이지요. 2년 후인 고려 고종 5년, 거란족은 채차 침입하여 고려 땅인 강동성을 점거합니다. 



▲ 무덤에 놓인 석인상. 


고려는 대 거란 전투에서 공을 세운 김취려 장군을 파견하여 성을 수복하라 명령합니다. 역사에서 말하는 "강동성 전투"가 바로 이 전투입니다. 고려는 몽골과 동맹을 맺고 거란을 공격합니다. 고려와 후요, 몽골이 뒤섞인 혼전이었습니다. 마침내 김취려 장군은 승리하여 고려를 지켜내는데 성공하지요. 



▲ 무덤을 지키는 무인상.


13세기, 혼란의 세월 고려를 지킨 영웅은 이제 화장산에 묻혀, 영원한 안식을 얻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장군의 조국인 고려와 몽골과의 짧은 동맹을 끝났고, 이후 30년 동안 침입을 받아야 했지요.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김취려 장군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고려의 영웅이 잠든 이곳에서 머리를 숙이며, 오늘의 여행은 끝을 맺습니다.  






Posted by Tel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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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충호 2017.10.27 08: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양의 주산(진산)은 고헌산으로 기록에 남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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