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목민관에게 백성들이 주는 최고의 명예, 만인산


 목민관은 조선시대 각 고을의 수령을 통칭하는 명칭입니다. 지금으로 비유하면, 시의 시장과 군의 군수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선의 대학자였던 다산 정약용 선생은 스스로 훌륭한 목민관이기도 했고, 목민관의 자세를 설파한 "목민심서"를 남겨 후세에 귀감이 되었습니다. 



▲ 언양의 상징 황소, 언양은 옛부터 황소를 많이 키운 곳이다. 


 이 목민심서에서 정의한 목민관의 여러 덕목 중 여러 차례 강조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나라에서 주는 돈 외에는 단 한 푼의 돈이라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목민심서에서 이 말을 강조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만큼 당시의 관리들이 백성들의 돈을 받았다는 반증이지요. 



▲ 울산박물관 전경.


 의관지도(衣官之盜)란 말이 있습니다. 해석하면 "의관을 갖춘 도적"입니다. 여기서 의관이란 벼슬을 하는사람이 입는 예복을 말하니 즉 관복을 입은 도둑이 됩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말한 나라에서 주는 돈만이 아니라 백성의 돈을 갈취한 관리들을 도둑에 빗댄 것이지요. 



▲  언양읍성 남문 앞 거리, 조선시대에도 이곳은 언양의 최고 번화가였다. 


 어떤 고을 수령이 부임하느냐에 따라 그 고을 사람들의 운명은 바뀌게 되었습니다. 청렴한 관리가 부임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으나, 그 수는 드물었습니다. 부패한 수령은 마땅히 공금으로 처리해야할 비용까지 백성들에게 부담시켜 말 그대로 고혈을 짜냈지요. 



▲ 만인산 (萬人傘). 


 여기, "만인산(萬人傘)"이 있습니다. 만인은 일만 인이란 뜻 보다는 "많은 사람들"이라고 해석하는게 타당합니다. 산(傘)은 우산이 아니라 햇빛을 가리는 양산입니다. 울산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만인산은 그 옛날 울산을 떠나게 된 한 목민관을 위해 울산의 선조들이 만든 것입니다. 



▲  옛 언향객사와 관사가 있었던 언양초등학교.


 사연은 이렇습니다. 조선 후기, 지금의 울산광역시 언양군에 현감으로 윤병관이란 관리가 임명되었습니다. 그가 떠날 때, 언양의 사람들은 모여 만인산을 만들어 증정했지요. 윤병관의 정치가 어떤 것이었을지는 쉽게 짐각이 가는 대목입니다. 떠나는 관리를 위해 사람들이 기꺼이 나서 이런 기념물을 만들어 줄 정도였습니다. 



▲ 옛 언양의 선조들의 이름은 만인산에 기록되었다. 

 

 만인산(萬人傘)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이 이름들은 당시 언양에 살았던 고을사람들의 이름을 쓴 것입니다. 전상범, 송종만, 전석범,,,,,,, 청렴한 목민관을 그냥 보내기 싫었던 이들의 이름은 이제 만인산에 새겨져 영원히 울산에 남게 되었습니다. 



▲ 읍성안 옛 길을 걸어본다. 


만인산을 보면 중앙에 우산의 중심 축을 꼽는 곳 위에 붉은 천을 덧대었습니다. 그 위에 "청덕 선정 영세불망 만인산"이라고 글씨를 썼지요. 청덕은 "덕"을 말하고, 선정이란 "좋은 다스림"을 말합니다. 영세불망은 "영원히 잊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 언양주민들의 손에서 현감의 손으로, 이제 다시 울산의 품으로 돌아온 만인산. 


부임한 이후 좋은 다스림에 감사하며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만인산을 만들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만인산이 지금 울산박물관에 돌아오게 된 것도 의미가 깊습니다. 윤씨 가문에서 집안의 보물로 전해오던 이 만인산은 언양현감 윤병갑의 고손인 윤정렬 선생님이 울산박물관에 기증한 것이지요. 



▲  언양읍성을 돌아보며, 만인산의 의미를 돌아본다. 


 울산박물관에 보관 중인 만인산과 그 만인산이 탄생한 언양읍성 곳곳을 둘러봅니다. 선정을 베풀어 백성의 마음을 얻는 수령과, 그 수령을 그냥 보내기 섭섭해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증표를 준 언양읍성에 살았던 선조들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백성을 위한 정치를 했던 목민관의 이름은 이를 잊지 않았던 언양사람들의 이름과 함께 영원히 남아 기억될 것입니다. 




Posted by Tel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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