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성 600년의 역사 - 역사를 돌아보다.


 다사다난했던 2016년 병신년이 가고, 2017년 정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2017년은 병영성 축성 6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조선왕조 실록에는 600년 전의 일을 이렇게 짧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경상 좌도 도절제사(慶尙左道都節制使)의 군영(軍營)을 울산군(蔚山郡)에 옮기었다. " 서기 1417년, 조선 태종 17년 1월 21일의 일입니다. 



▲ 병영성 동쪽을 흐르는 동천의 모습. 


 도절제사는 각 지방의 군사를 다스리던 무관의 벼슬을 말합니다. 병마도절제사는 지금으로 치면 육군이며, 수군도절제사는 해군입니다. 군영은 그 도절제사가 직접 머무르며 병사를 지휘하는 곳이지요. 지금은 경상도를 남도, 북도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지만, 조선시대에는 좌도, 우도로 나누었습니다. 



▲ 순교자 성당 - 그 옛날 지휘관이 병사들을 지휘하던 장대가 있던 장대벌 터이다. 


 서울에서 남쪽을 봤을때 울산은 좌측에 속해 경상좌도이지요. 병영성은 바로 경상 좌도 병마도절제사가 머무르던 곳이었습니다. 이는 울산의 지리적 중요성을 말해주는 것이지요. 울산은 창원에 설치된 경상우도 병마도절제사 군영과 함께 남쪽을 지키는 요새였습니다. 



▲ 병영성 남문이 있었던 곳.


 600년의 세월 동안 많은 것이 변해갔습니다. 조선의 든든한 방어성이었던 병영성의 남쪽 성벽은 무너졌습니다. 옛 병영성의 위용을 찾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시작은 병영 1동 주민센터에서 길을 잡습니다. 주민센터 앞에는 병영성을 거쳐간 옛 선인들을 기념하는 일종의 기념비인 "영세불망비"가 가득하지요. 



▲ 병영초등학교 앞 하마비. 


 다음은 병영초등학교입니다. 이곳은 옛날 관청인 동헌과 관사인 객사가 있었던 곳입니다. 초등학교를 오르는 계단 옆에는 "토포사이하계하마"라 쓰인 하마비가 있습니다. 일정 벼슬 이하의 관원은 이곳에서 말을 내려 걸어가란 의미이지요. 병영이 폐지된 이후 이곳은 학교가 들어서게 됩니다. 



▲ 삼일사 전경. 


 그 옛날 일신초등학교가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은 병영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꾸어 이어지고 있지요.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삼일만세운동이 벌어집니다. 한달 뒤인 4월 4일, 울산 병영의 주민들은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일신초등학교에서 목 놓아 만세를 외치지요.  



▲ 외솔 최현배 생가에서 옛 병영성의 향기를 느낀다.


 옛 모습을 찾기 힘든 병영성이지만, 외솔 최현배 선생님의 생가만은 복원되어 그 옛날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 옛날, 웅장한 성벽이 사방을 둘러싸고, 동서남북 네 방위의 문에는 병사들이 엄히 방위를 했을 것입니다.  동헌과 객사가 있고, 부자들이 사는 기와집과 이런 아기자기한 초가집이 성 안을 채웠습니다.  



▲ 병영성 북벽. 


 성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옛 성의 북쪽 지역입니다. 언덕 위 빙 둘러싼 성벽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지요. 산책을 하기에도 제격이라 이곳을 찾는 주민들도 많습니다. 성벽 위에서 북쪽을 바라보는 경치 역시 빼어납니다. 곳곳에 설치된 안내판 역시 산책하는 재미를 더합니다. 

 


▲ 북쪽 성벽 위에서 내려다 본 경치.


 600년전, 이곳은 경상좌도 병마도절제사가 머물던 군사거점이었습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병영의 기질은 600년을 이어 내려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일제강점기에 항거한 삼일운동 역시 이곳에서 벌어졌고, 삼일운동에 참여했다 숨진 분들을 기리는 사당인 삼일사 역시 이곳에 있습니다. 



▲ 600년의 역사, 자부심이 되다. 


 옛 병영성 곳곳을 돌아보며, 600년 역사를 돌아봅니다. 역사는 기록이며, 흔적입니다. 선조의 역사는 후손에게 자부심이 되기도 하지요. 경상좌도를 호령하던 병마사의 역사는 병영 사람들에게 자부심이 되었습니다. 일제의 총칼에 맨몸으로 맞서 대한독립을 외쳤던 원동력의 하나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정해봅니다. 600년의 역사를 돌아보며 옷깃을 여밉니다. 






Posted by Tel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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