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산책하기 좋은 길 - 포은 정몽주의 흔적을 따라 걷는 옛 길. 


포은 정몽주는 고려 말의 대학자입니다. 광해군은 그를 가르켜 "신라에서 고려 말에 이르기까지 천 년 동안에 겨우 포은(圃隱) 한 사람을 보게 되었을 뿐이었다."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이는 광해군 뿐 아니라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공통된 시각이기도 했지요. 



▲ 반구대 계곡. 


고려말, 성리학이 들어왔을 때의 일입니다. 스승인 목은 이색도 포은 정몽주를 "동방이학의 비조"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당시에 성리학은 막 뿌리를 내린 터라, 들어온 자료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책을 읽고 막히는 구절은 여러 유학자들이 모여 토론을 하였는데, 정몽주가 생각한 부분은 후에들어온 책으로 확인하니 거의 다 맞았다고 합니다. 



▲ 집청정 모습. 


스승 목은 이색의 칭찬도 이런 정몽주의 학문을 높게 평가해서였지요. 당시 대륙의 정세는 매우 급박했습니다. 세계제국 원은 그 수명을 다하고, 맨주먹으로 나라를 세운 주원장의 명나라가 남쪽에서 일어서고 있었지요. 포은 정몽주와 울산의 인연은 이 격변기에 시작됩니다. 



▲ 반구서원.

 

"원과 외교를 계속하느냐? 명과 외교를 맺느냐?" 지금의 우리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질문이지만, 당대의 고려인들에게는 생명이 걸린 문제였습니다. 당시 성균관의 대사성으로 재직했던 정몽주의 선택은 "명"이였습니다. 원은 그 세력을 다하였고, 명과 친교하는 것이 고려에게 더 이롭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 언덕 위에 반구서원 유허비가 있다. 아쉽게도 계곡 때문에 접근이 쉽지 않다. 


이 판단으로 포은 정몽주는 울주군으로 유배를 떠나게 됩니다. 친원파가 득세했던 고려 조정은 국익과 백성의 안전을 우선한 포은 정몽주를 고깝게 보았던 것이지요.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 언양까지,,,, 포은 정몽주에게는 괴로운 유배길이었습니다. 일신의 안위보다는 바람 앞 등불 같았던 고려의 처지를 더 걱정했다고 전합니다.  




▲ 대곡천 계곡에서 그 옛날 포은 정몽주의 발자취를 찾아본다. 


반구대 계곡은 이때 포은이 자주 찾았던 곳이지요. 포은 정몽주가 음력 9월 9일인 중양절에 이곳을 찾아 쓴 글인 "중양절감회"가 아직도 남아 전하고 있습니다. 


客心今日轉凄然  객심금일전처연 나그네 마음, 오늘따라 더욱 쓸쓸하여

臨水登山瘴海邊  임수등산장해변 물 따라 산 올라 바닷가에 다다랐다. 

腹裏有書還誤國  복리유서환오국 가진 지식 오히려 나랏일을 그르치고, 

囊中無藥可延年 낭중무약가연년 품 속에 약이 없으니, 남은 수명 언제련가.



바위에 새겨진 글씨는 조선 효종 6년인 서기 1655년의 것이다.  


떠나온 고려를 걱정하는 마음이 전해오는 시입니다. 남을 원망하기 보다는 자신의 모자란 재주를 탓하고, 난세를 바로잡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절히 묻어나는 싯구이지요. 쓸쓸한 마음을 이곳 반구대를 찾아 풍경을 보고 시를 지어 달랜 포은의 마음이 전해옵니다. 



▲ 계곡길은 잘 정비되어 산책하기 그만이다. 


후세 사람들은 포은 정몽주를 기려 이곳을 포은대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포은 정몽주가 다녀간 이곳에는 후학들도 찾게 되어 포은 정몽주의 발걸음을 따라 걷게 됩니다.  이 골짜기에 들어선 집청정과 반구서원, 반구서원 유허비 등은 이 발걸음으로 만들어진 것이지요. 골짜기 전체가 포은 정몽주와 그를 기리는 후학들의 자취입니다. 



▲ 여름, 생명력으로 가득찬 계곡.


앞서 말씀드린 포은의 시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龍愁歲暮藏深壑 용수세모장심학 세밑 용은 골짜기에 숨어 서글프고

鶴喜秋晴上碧天 학희추청상벽천 가을 학은 푸른 하늘에 날아 기쁘구나 .

手折黃花聊一醉 수절황화료일취 손으로 국화 꺾어 다시 한 번 취하니

美人如玉隔雲烟 미인여옥격운연 우리 임금 옥 같은 모습 구름 넘어 떠오르네 .



▲ 여행의 끝은 반구대 암각화. 


다들 아시는 것처럼 포은 정몽주는 고려를 지키다 이방원이 보낸 자객의 손에 죽게 됩니다. 일생을 올곶게 고려만을 위해 살았던 충신은 후세의 선비들의 귀감이 되었지요. 반구대안길을 걸으며, 옛 선비의 발길을 따라 걷습니다. 여름. 대곡천 계곡은 한 없이 푸르릅니다. 그 옛날 포은 정몽주가 이곳을 찾을 때도 이런 빛이 아니었을까요?  








Posted by Tel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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