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신라 충신(忠臣) 박제상(朴堤上)과 그의 부인을 기리기 위해 세웠던 사당의 터이다.

박제상은 신라 시조(始祖)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후예이다. 눌지왕(訥祗王 : 재위 417∼458)이 임금이 된 후,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잡혀 있던 두 동생을 몹시 보고 싶어했다. 박제상은 임금의 명령을 받아, 먼저 고구려로 가서 복호(卜好)를 구출해냈다.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미사흔(未斯欣)을 구출해 귀국시켰으나, 일이 탄로나 자신은 붙잡혔다.

자신의 신하가 되면 많은 상을 주겠다고 일본왕이 달랬지만, 박제상은 끝내 신라 신하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일본왕은 심한 고문을 가해 소용이 없자 그를 불에 태워 죽이고 말았다.

한편 박제상의 부인은 딸들을 데리고 치술령(鵄述嶺)에 올라가 일본쪽을 바라보며 통곡하다가 죽었는데, 그 몸은 돌로 변하여 망부석(望夫石)이 되고, 그 영혼은 새가 되어 날아가 은을암(隱乙岩)에 숨었다고 전한다.

사람들은 박제상의 부인을 치술신모(鵄述神母)라 하고 사당을 세워 제사 지냈는데, 조선시대에 이르러 이 사당 자리에 치산서원이 세워졌다고 한다.


치산서원
치산서원은 1979년 10월9일 울산광역시 기념물1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치산서원은 조선영조21년(1745)에 세워 졌어나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폐쇄후 근래에 울산시에서 복원하였다.

치산서원의 삼강문
삼강문은 세종때 발간된 삼강행실도에 박제상의 충절을 소개한데서 유래한것같다.
삼강문은충의(忠義). 효도(孝道). 정렬(貞烈)을 상징한다.

 


관설당


관설당
박재상의 호를 따서 관설당 이라 하고 서원에서는 오늘날의 교실에 해당된다.





치산서원 동제,서제

 

사효문과 쌍정려

두딸의 위패를 모신곳

 



망해문과 신모사
부인의 위패를 모신곳


성인문
박제상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곳으로  슬기와 덕이 뛰어나 우러러 본받을만 함을 상징함.


치술령의 망부석
박제상의 부인이 두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 한없이 기다리다 망부석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은월암
박제상의 부인이 망부석으로 변한후 한이되어 새로 변하여 은월암으로 날아와서 숨었다고 한다.

박제상 기념관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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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1 BlogIcon 방문자 2011.09.25 06: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치산서원에서 치술령으로 등산하면서 살펴볼수있는곳입니다
    좋은곳 잘 설명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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