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버린 사람들


울산광역시 중구 병영은 옛 병영성이 있던 곳입니다. 병영성은 지금으로 말하면, 일종의 군사기지입니다. 정싱명칭은 울산 경상좌도병영성(蔚山 慶尙左道兵營城)입니다. 현재 울산은 광역시가 되었고, 그 전에는 행정구역상 경상남도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서울에서 남쪽을 바라볼때의 기준으로 남과 북이 아닌 좌와 우로 경상도를 구분했지요. 

 

병영성 북쪽에서 바라본 풍경.


병영성을 관장하던 사람은 바로 병마절도사입니다. 조선 초기에는 전국에 15명의 병마절도사가 있었고, 후기에는 군사편제가 재편되면서 16명이 됩니다. 조선 팔도에 한 명에서 세 명의 병마절도사가 배치되었는데, 절도사가 많은 곳은 조선시대 군사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 곳입니다. 왜적의 침입이 잦았던 경상도는 세 명의 병마절도사가 있었지요.   

 

 


그 옛날 병영의 삶을 짐작하게 하는 병영성 내 외솔 최현배 생가터.


조선 후기를 기준으로 경상감사가 대구에 있었고, 경상우병사가 진주에 있었습니다. 울산 병영성의 경상좌병사와 함께 세 군사거점을 방비했던 것이지요. 조선시대 전체를 보면, 경상감사 병영은 상주에서 대구로, 경상우병사 병영은 창원에서 진주로 위치를 옮기게 됩니다. 울산 병영성만은 변동이 없었으니, 이곳의 전략적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병영 초등학교 앞 하마비.


지금의 울산 중구 병영 일대는 옛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병영 초등학교 앞에는 지금도 하마비가 서 있습니다. 토포사이하개하마(討捕使以下皆下馬)라고 써 있습니다. 이는 토포사 이해는 모두 말에서 내려 걸어가란 의미입니다. 토포사는 병마절도사를 의미하며, 병마절도사만이 유일하게 말을 타고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지요.  

 


 

옛 병영성 남문 터. 


인물평을 말하는 하마평(下馬評)은 바로 이 하마비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하마비에서 말을 내린 벼슬아치들은 관가에 들어가 일을 보게 됩니다. 말을 끌던 아랫사람들은 하마비 앞에서 상관이 일을 마치길 기다렸지요. 이들은 기다리는 동안,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모시던 상관들에 대한 과감없는 평가는 어느 누구가 한 평가 보다 정확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마평입니다. 

 


역대 경상좌도 병마사들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


전쟁이 냈을 때 병사를 지휘해 외적을 막아내는 것이 병마절도사의 주요 임무입니다. 전쟁이 없는 평시에는 병사들을 훈련시켜 전쟁을 대비했지요. 조선시대 병영성 남쪽 남문 밖에는 넓은 터가 있었는데, 이를 장대라고 합니다. 장대(將臺)는 장수가 지휘하던 넓은 대를 말하지요. 울산 병영성의 장대는 현재 울산병영순교성지성당이 들어서 있습니다.  

 


장대에는 이제 순교자들을 기리는 비석이 있다. 


이는 이곳에서 돌아가신 옛 울산의 천주교 순교자를 기리는 성당입니다. 사연은 이러합니다. 조선시대 후기, 조선의 민중들은 새로운 가르침을 갈망합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천주교의 교리는 이들에게 어둠 속의 빛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신분제를 당연하게 여겼던 조선왕조의 입장에서는 위험한 가르침이었지요. 

 


순교성지성당. 


조선 철종 10년, 서기 1860년 일어난 경신박해와 고종 3년, 서기 1866년 일어난 병인박해는 이를 탄압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와 생명,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자신의 종교를 지키기 위해 죽어야 하는 상황은 종교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된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요. 

 


 

성당 내부 모습.


오치문, 허인백, 김종륜, 이양등 등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서 사형을 당합니다. 사형방식은 목을 자르는 참수였습니다. 유교의 나라였던 조선은 죽은 후에도 몸을 온전하게 보존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사극에 나오는 사약(賜藥)은 죽음의 약이란 의미가 아니라, 임금이 하사하는 약이란 의미입니다. 죽되, 시체를 온전히 보존하게 해주는 임금의 자비였지요. 

 


병영 동쪽을 흐르는 동천강. 


150여년 전, 이 땅에는 자신의 종교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는 비극이지만, 비극의 역사 역시 역사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 개개인의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분들의 희생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옛 병영 곳곳을 돌아보며 자유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돌아 봅니다.  

 

 



 

 


Posted by Tele.mann

댓글을 달아 주세요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