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율사가 창건한 신라의 옛 영광을 돌아본다


 간월사의 역사는 신라 진덕여왕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진덕여왕은 신라의 제 28대 왕으로, 선덕여왕에 이은 우리 역사상 두 번째의 여왕이었습니다. 훗날 신라 태종무열왕이 되는 김춘추가 정치 일선에서, 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운 김유신이 신라의 국방을 담당하며 활약했던 시기입니다. 신라는 나날히 번성하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불교가 있었습니다. 



▲ 고즈넉한 간월사지 


 간월사를 창건한 분은 바로 지장율사입니다. 지장율사는 신라 왕족 출신입니다. 속명은 김선종이었습니다. 부모를 일찍 여위고 처자를 버리고 불문에 귀의했다고 전합니다. 선덕여왕 5년인 서기 636년, 자장윤사는 꿈에 그리던 당나라에 가게 됩니다. 선덕여왕의 명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왕은 당에 가서 불법을 배워 신라에 전파하라 명한 것이지요. 



▲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을 모신 건물 


 "불교의 나라"라고 자부했던 신라의 승려 중에서 왕명으로 뽑혀 당나라에 유학을 간 것입니다. 자장율사의 불법에 대한 이해는 이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 비유하면 국가가 주도하는 중요 산업을 위해 나라에서 인재를 뽑아 외국으로 국비유학을 보내는 것일까요? 독실한 불자들에게는 양해를 구합니다. 



▲ 옛 불상의 표정이 이채롭다.


 읽는 분들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종교와 산업을 비교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우매한 중생의 실수를 부처님의 대자대비함으로 이해해주시길 빌어봅니다. 이만큼 자장율사의 불학에 대한 이해가 깊었으며, 신라가 자장율사에게 건 기대 또한 컸습니다. 그후 7년 동안 자장율사는 중국 오대산에서 부처님의 진리를 깊이 매진하게 됩니다. 



▲ 보물 370호로 지정된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


 자장율사의 공부는 "종"에 관계 없는 것이었습니다. 화엄종의 두순 스님과 계율종의 도선 스님에게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는 계파에 얽매여서 본질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의 불교를 그대로 수용하기 보다는 그 뿌리를 탐구하여 자장율사의 고국인 신라에 전파하기 위함이기도 했지요. 



▲ 간월사지의 고즈넉함에서 영고성쇠를 느낀다. 


 신라에 돌아온 다음에는 왕립사찰인 분황사의 주지로 임명됩니다. 자장율사는 이곳에서 교육에 매진합니다. 자신이 배우고 정리한 불학을 고국 신라의 불제자들에게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가 분황사에서 논한 대승론은 명강의였다고 전합니다. 지식에 목 마른 신라의 불제자들에게 자장율사의 강의는 어둠 속에 길을 밝히는 달빛과 같았습니다. 

 


▲ 간월사지 석탑.


 울산의 간월사지는 이런 분위기에서 만들어진 절입니다. 간월사 자락에 동쪽을 바라보고 위치한 절터는 지금 봐도 명당입니다. 자장율사는 당에서 불법을 연구하고 고국 신라에 돌아왔습니다. 자신의 불법을 전파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요. 좋은 터에 절을 지은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간월사는 불법을 신라 곳곳에 전하고자 하는 자장율사의 염원이 담긴 곳입니다.  



▲ 석탑에 조각된 인왕상.


 이곳이 불탄 것은 임진왜란 때의 일입니다. 조선시대 전기까지만 해도 지리서와 지도에서 확인되던 간월사였습니다. 왜란 이후에 기록이 사라진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때 왜병의 방화에 절이 탄 것으로 추정합니다. 당시 국토를 유린하던 왜병의 손에 부산 만덕사, 경주 불국사 등 오랜 고찰이 많이 불타 사라졌습니다. 


▲ 무너진 축대. 


 다시 그 터에 절이 들어섰다 19세기 말 간월사는 다시 사라집니다. 지금 간월사지에서 볼 수 있는 유물들은 통일신라 양식인 석탑과 건물을 지탱하던 축대와 장대석, 보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이지요. 고즈넉한 터에 올라 반쯤 무너져 내린 축대를 바라봅니다. 옛 신라의 고찰이 있었던 이곳, 자장율사가 불법을 전하기 위해 세웠던 영화를 그려봅니다. 



▲ 간월사지의 봄은 가고, 꽃은 저물었다. 


 불법은 과문하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한 자는 윤회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곳 간월사지는 그 옛날 자장율사가 만들어 통일신라와 고려, 조선 초기까지 유지되었습니다. 전쟁을 만나 사라진 이곳은 이제 고즈넉함만이 가득합니다. 불경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 "태어난 자는 모두 죽"듯 절은 생명을 다하고 절터만 남았습니다. 옛 절터를 거닐며 "영고성쇠"를 체험합니다. 



 



Posted by Tel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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