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촌 마을의 역사이자 울산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 만정헌  


500년을 이어온 오래된 집이 있습니다. 이 집의 역사는 한 가문의 역사입니다. 또한 한 마을의 역사이기도 하지요. 그 옛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던 이곳에 한 사람이 터를 잡고 집을 지었습니다. 그 집을 중심으로 선조의 후손들은 마을을 이루고 살았지요. 안동 하회마을이나 경주 양동마을처럼 한 가문이 마을 구성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마을을 씨족마을이라 부릅니다. 



▲ 명촌마을 앞쪽의 들판


 울산 울주군 명촌마을 역시 경주김씨 씨족마을입니다. 밝얼산 자락이 끝나는 곳에 명촌 마을은 자리합니다. 동쪽으로  안산, 남쪽으로 산성산이 있습니다. 주위에 산이 많은 지형이지만, 답답하기 보다는 포근한 느낌입니다. 마을 앞쪽은 들판이 펼쳐져 있습니다. 농업이 중요하던 조선시대, 마을의 경제를 지탱했던 곳입니다. 


▲ 경주김씨 세적비와 광주노씨 부인 정려각


 이곳에 처음 집을 지었던 사람은 언양 현감을 지냈던 경주김씨 김자감입니다. 명촌 마을 입구에는 경주김씨 세적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김자감 이후 이 마을에 뿌리를 내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경주김씨를 기념하기 위한 작은 기념비이지요. 세적비 바로 옆에는 광주노씨 부인의 정절을 기리는 정려각이 서 있습니다. 



▲ 만정헌 앞 연못


 정려각 역시 이 마을에 터를 잡은 경주김씨의 역사입니다. 경주김씨 가문의 며느리이자 아내, 어머니였던 한 부인을 기리는 비석이기에 그러합니다. 아쉽게도 정려각은 문이 잠겨 있어, 그 내용을 살필 수가 없습니다. 까치발을 하여 담 위로 비석명을 읽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귀부인은 그 얼굴을 쉽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 만정헌 입구


 언양 현감을 지냈던 김자감이 만정헌을 지었던 것은 성종 4년인 서기 1473년의 일입니다. 지금이 2016년이니, 543년 전의 일이지요. 경주김씨는 대대로 이름난 가문이었습니다. 김자감 역시 조선의 개국공신인 계림군 김균의 증손자입니다. 김균이 받은 군호는 계림군(鷄林君)입니다. 계림은 경주를 말합니다. 김자감은 경주에서 울산 명촌 마을로 터를 옮긴 것이지요. 


▲ 500년도 넘게 이어온 고택인 만정헌


 마을의 이름인 명촌(鳴村)에도 재미난 사연이 전합니다. 매년 봄이 되면 이곳에 새들이 모여들어 요란하게 울었다고 합니다. 날씨가 풀려 새가 모이는 것은 계절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를 마을 이름에 이토록 붙일 정도면 제법 많은 새떼가 모였던 모양이지요. 개인적인 추정이지만, 이 일화는 명촌 마을의 풍요를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 만정헌 내부모습


 새들은 먹을 것이 많은 곳을 찾아 모입니다. 밤에는 따뜻한 곳에 둥지를 틀지요. 산이 끝나고 들판이 시작되는 명촌마을은 최적의 서식지였을 것입니다. 새들이 살기 좋은 곳은 사람 역시 살기 좋은 곳입니다. 명촌 마을에 터를 잡은 김자감은 언양 현감이었습니다. 자신이 다스리면서 가장 잘 알았던 고장이 언양입니다. 이곳에서 집터를 고르는 것도 신중했을 것입니다. 

 

▲ 김지가 써서 지금까지 전해오는 현판


 만정헌에는 명헌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습니다. 이는 "명촌에 있는 집"이라는 뜻도 되고 한 사람의 호이기도 하지요. 명촌 마을의 시조인 김자감의 9대손인 김지가 이 만정헌을 크게 수리했을 때 옛 현판을 떼고, 새로이 명헌이라는 현판을 붙였다고 합니다. 근처 경주김씨 후손들은 옛 이름이 더 익숙했는지 여전히 만정헌이라고 불렀지요. 만년각이라고도 하는데 자손들이 만년이 지나도 번창하라는 의미입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부르는 명칭 역시 유래가 있습니다. 


▲ 개인의 역사는 가문, 마을로 확장된다.


 그 옛날, 김자간이 이곳을 지었고, 김자감의 9대손 김지가 크게 고친 만정헌에는 아직도  그 후손이 살고 있습니다. 선조 김자간으로부터 세대를 따지면 20대에 이릅니다. 조선이 망하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다시 대한민국이 들어선 세월입니다. 500년도 넘게 이어져 온, 울산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보물과 같이 지켜온 후손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 바랜 주춧돌과 기둥에서 역사를 느낀다. 


 주인의 허락을 얻고 잠시 만정헌 마루에서 주춧돌을 내려다 봅니다. 자연석 그대로를 가공하지 않고 올린 주춧돌은 김자감이 처음 만정헌을 지을 때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위에 올라간 싸리나무 기둥은 세월의 세례를 받아 바랜 모습입니다. 500년도 넘게 이어온 울산의 역사이자, 한 마을의 역사를 만정헌의 주춧돌과 기둥으로 느낍니다. 

 

 




 


Posted by Tel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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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정선 2017.01.26 19: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잘 읽고 보았습니다. 자세한 설명 읽으니 얼마나 무지했던가 반성하게 되네요. 저 가문의 후손으로 깊은 애정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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