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매어 외친 "대한독립만세!" - 울산 3.1 운동과 삼일사 


 울산의 지명 "병영"은 행정구역으로는 울산광역시 중구 병영 1동과 병영 2동을 말합니다. 병영이란 지명의 유래는 조선시대 이곳에 있었던 "경상좌도 병마절도영"에서 유래합니다. 병마절도영을 줄여 부르게 된 것이 정착하여 지명이 된 것입니다. 병마절도영은 현대식으로 따지면 육군 지역사령부 정도에 해당할 것입니다.   

 


▲ 병영1동 주민센터 앞에 있는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공덕비

 

 옛 병마절도영의 흔적은 지금도 병영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병영 1동 주민센터 앞에 줄을지어 서 있는 병마절도사들의 공덕비가 그러하며, 지금도 당당히 그 모습을 자랑하는 병영성의 성벽 또한 그러합니다. 본래 이곳에 군사기지가 설치된 것은 남쪽의 왜적을 방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병영의 주민들이 항일정신을 가지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 울산 병영성


 1910년 불법적인 강제병합 후, 일제의 수탈은 날로 심해졌습니다. 경제적 수탈은 물론, 우리가 기본적으로 누려야할 자유마저도 일제의 이익에 의해 제한당합니다.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강탈에 의한 불법적인 수탈이었습니다. 1919년에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가 승하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분노한 민심은 폭팔합니다. 



▲ 울산 3.1운동이 시작된 병영초등학교 (당시 일신학교) 교정


 서기 1919년 3월 1일, 우리나라가 독립국이며 우리나라 국민이 자주민임을 선언하는 3.1운동이 시작됩니다.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은 금새 전국으로 퍼져가지요.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이라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이 지방으로 전파되는 형국이었습니다. 서울에서 공부하던 유학생들이 자신들의 고향에 기미독립선언서를 전하고 동지를 모아 그곳에서 3.1 만세운동을 한 것이지요. 



▲ 병영초등학교에 있는 기념비 


 울산에 3.1운동 소식이 들린 것 역시 외지에 나가 공부를 하고 있던 학생들이 그 소식을 고향에 전했기 때문입니다. 풍문으로 소식은 들었으나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었던 것을 당시 서울에서 생생한 모습을 봤던 학생들에 의해 각 지방으로 전파됩니다. 일제의 탄압으로 금서로 취급되었던 "기미독립선언서" 역시 이런 경로로 전해졌지요. 



▲ 외솔 최현배 생가


 한명조, 이영호가 3.1 운동의 소식을 고향 병영에 알리며, 병영의 3.1운동에 관한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당시 병영청년회는 사립 일신학교 졸업생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3.1 운동을 주도한 것도 이들이지요. 일제의 감시를 피해 조심스럽게 함께 참여할 사람들 모으고, 기미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만들었습니다. 



▲ 병영 삼일운동 참가자를 기리는 사당인 삼일사


 거사일은 4월 4일로 정해집니다. 장소는 지금의 병영초등학교 운동장이었지요. 넓은 터가 있는 운동장은 사람이 모이기 좋은데다, 평소 청년회가 운동을 하던 곳입니다. 즐길 거리가 많지 않았던 일제시대 청년회가 편을 갈라 축구를 차는 것은 병영에서 좋은 구경거리였습니다. 이를 보기 위해 평소에도 사람이 모이는 터라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좋은 곳이었지요. 



▲ 삼일사 내부모습


 4월 4일 시작된 3.1 만세운동은 4월 5일로 이어집니다. 일제의 가혹한 탄압에 자유를 억압당했던 병영의 주민들이 호흥했던 탓에 시위대는 수천명으로 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제는 평화시위를 하던 이들을 검거하였고, 이에 시민들이 항의하자 발포합니다. 일체의 정당성이 없었던 일제는 무력에 의지해 폭압을 했던 것이지요. 



▲ 삼일사 앞에 서 있는 삼일 충혼비 


 일제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총탄에 쓰러진 사람은 다음과 같습니다. 엄준, 문성초, 주사문, 김응룡은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송근찬, 김규식, 김두갑 등 많은 이들이 다쳐 실려갔습니다.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은 함께 3.1운동을 주도했던 동지들에 의해 추모됩니다. 감시를 피해 묘소를 만들고, 사당을 지어 매년 제사를 이어온 것이지요. 이를 위한 사당이 바로 병영초등학교 뒷편에 있는 삼일사입니다. 



▲ 외솔 최현배 선생님이 쓴 삼일사 비문 원고


이것으로 울산 중구 곳곳에서 병영 3.1운동의 흔적을 돌아 보았습니다. 불의에 항거해 민족의 당연한 권리를 찾으려 했던 3.1운동의 정신은 왜적에 맞섰던 최전방 군사기지였던 옛 경상좌도 병마절도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병영의 발전을 위해 일했던 청년회는 삼일운동을 주도했으며, 살아남은 이들은 먼저간 동지를 추모하며 감시를 피해 제사를 모셨던 것이지요. 삼가 옷깃을 여미며 이들의 희생에 경의를 표합니다. 





Posted by Tel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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