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끝나고 난 9월은 완연한 가을의 모습으로 접어 들고 있습니다. 아직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긴 하지만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은 가을의 기운이 물씬 풍긴답니다. 9월과 10월의 주말은 단풍이 한참 좋을 때인데요. 가을을 만끽하기 위해 울산의 좋은 여행지를 울산누리가 추천해 드릴까 합니다. ^^ 영축산 동쪽기슭에 자리한 망해사와 망해사지 석조부도를 구경하러 떠나보실까요?

 


 

<망해사>

*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청량면 율리 222
* 건립연대 : 875 ∼ 885

 망해사는 울주군 청량면 율리에 있었던 고찰로 신라 제 49대 헌강왕(875 - 885)때에 세워졌습니다. 헌강왕 5년(879) 3월에 임금이 동쪽의 고을에 거동하여 민정을 살필 일이 있었는데 이 때의 일로서 나라는 태평하여 풍우는 4계절 순조롭고 풍악과 노래 소리가 끊이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헌강왕이 하곡에 왔다가 개운포를 구경하고 돌아가는 길에 물가에서 잠시 쉬었는데 돌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여 지척을 분별할 수 없어 길을 잃을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이때 임금을 따르던 좌우에게 물으니 일관이 아뢰되 이것은 동해용의 조화이오니 좋은 일을 하여 풀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에 왕은 수행한 신하에 명하여 용을 위하여 근처에 절을 세우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자 안개와 구름이 흩어지고 개이며 동해용이 아들 일곱을 데리고 임금 앞에 나와 덕을 찬양하여 춤을 추었습니다. 이 구름이 개이고 안개가 흩어진 곳을 개운포라 하였는데요. 임금이 서울로 돌아와서 청량면 율리의 영축산 동쪽기슭 좋은 터를 골라 용을 위한 절을 세우니 이 절이 망해사인데 일명 신방사라고도 하였습니다.

 그 후 신라사람들은 역신을 쫓는 방편으로 처용의 초상화를 그려 문간에 붙이는 풍속이 생겨났다고 전해집니다. 한편 왕의 분부를 따라 지어진 절간이 문수산 동쪽 영축산 중턱에 자리잡은 망해사입니다. 왕은 그 당시 동해용왕이 문무대왕의 화신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태종무열왕이 된 김춘추와 김유신에 의하여 이루어졌으나 미쳐다 이루지 못한 통일과업을 김춘추의 아들인 법민이가 후에 문무대왕에 오르면서 통일을 마무리 한 것입니다.



 문무대왕은 승하할 때 임종 유언으로서 죽거든 땅에 묻어서 능을 쌓지 말고 화장을 하여 그 유골을 동해바다에 수장해 달라고 하였다.사후에 동해용왕이 되어 신라를 지키는 수호신이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 문무대왕의 아들 신문왕은 월성군 양북면 용당리 앞 바다 문무대왕 수중왕릉이 있는 곳에서 일진풍파가 일더니 섬 하나가 움직였습니다. 왕이 그곳에 나아가서 용을 만나, 천사옥대와 주리야 합하는 대나무를 얻어 피리를 만드니 이 피리가 바로 만파식적이였습니다. 만파식적을 불면 만가지가 뜻대로 이루어진다 하여 이름하여 만파식적인데요. 헌강왕은 아마도 이때 동해용왕이 다름 아닌 문무대왕의 화신으로 알고 망해사를 짓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일이 있고부터 신라사람들은 용왕을 숭배하는 풍조가 생겨난 것입니다.

 

 

 <망해사지 석조부도>
*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청량면 율리 산 16-3


 망해사는 동해용왕의 식복과 신라의 호국을 빌던 신라 고찰이였건만 그 후 역대의 병난으로 파괴되어 불타버리고 지금은 그 법당이 세워졌던 자리에 주초석만 정연하게 심어져 남아있고 법당 뜰 좌우에 세워진 석조부도 두기만 남아있습니다. 석조부도는 보물 173호로 지정되어 있는데요.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율리 망해사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부도. 2기. 높이 동부도 3.4m, 서부도 3.3m. 보물 제173호. 망해사 법당 북쪽에 남향하여 장대한 석축을 쌓고 그 위에 널찍한 대지를 마련하여 동서로 부도를 세웠습니다. 일찍이 파손되었던 것을 1960년 복원하여 원형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두 부도는 건조양식이나 각 부의 조각수법이 같으며, 전체규모에 있어서도 같은 크기를 보이고 있습니다. 다만 서쪽 부도에 비하여 동쪽 부도는 손상이 많은 편이죠. 이 부도는 전형적인 신라부도의 양식인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을 따르고 있으며, 여러 장의 큼직한 장방형 판석을 마련하여 그 위에 기단부를 형성하였습니다. 기단부는 평면 8각이며 상·중·하대석으로 이루어졌는데 상대·중대는 1매씩이나 하대만은 2매를 겹쳐놓았습니다. 즉, 하대는 밑에 8각의 대석을 놓고 그 위에 연화대석(蓮華臺石)을 올려놓았는데, 8각 대석의 측면에는 8면마다 하단에 얕은 각형의 굽을 새기고 상단에는 갑석형(甲石形)을 새겼으며, 그 중간에는 전면에 꽉 차도록 안상(眼象)을 1구씩 얕게 조각하였습니다. 연화대석은 8각을 아래의 안상석 8각에 맞추어놓고 8판(八瓣)의 복련(覆蓮)을 조각하였는데, 복련의 안쪽에는 고사리문, 삼산형(三山形)의 귀꽃이 조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복련대 상면의 중앙에는 8각형으로 1단의 높직한 각형 굄을 새기고 그 위에 낮은 3단의 각형 굄을 마련하여 중대석을 받고 있습니다. 중대석은 낮은 편으로 8면에 양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가 모각되었을 뿐 아무런 조식이 없습니다. 상대석은 하대석과 대칭적으로 8각형의 각형 받침단을 조각하였는데, 상단의 높은 받침 1단은 하대석 하단 굄과 대칭이나, 그 밑의 낮은 받침단은 2단뿐으로 하대석 굄 3단보다 1단이 적습니다.


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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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울산가이드 2014.06.20 0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취산(靈鷲山)

    불교에서는 영취산(靈鷲山) 중

    취(鷲)를 축으로 읽는다고 하네요.

    영취산, 영축산 모두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백과사전에서 망해사를 찾으면

    영취산, 영축산 짬뽕(?)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한자가 영취산靈鷲山 이라고 하더라도

    현재 네이버, 다음 지도에 영축산으로 표기되어 있고

    망해사에서 관리하는 망해사 홈페이지에도 영축산이 표기되어 있기때문에...

    영축산이라고 하는게 맞지 않을까요?


    이 블로그의 제목에는 영취산으로, 본문에는 영취산, 영축산이 모두 있군요.

    • Favicon of https://blog.ulsan.go.kr BlogIcon 울산누리 2014.06.19 10: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항상 울산누리 블로그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확인한 결과 정확한 지명은 영축산이 맞습니다. 영취산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답니다. 수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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