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입니다.
수많은 왈츠를 작곡을 하여 그를 "왈츠의 왕"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요한 스트라우스 1세인데, 그는 '왈츠의 아버지'라고 불린답니다. 또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동생들도 작곡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음악으로 먹고 살기 쉽지 않았던 당시,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아들이 음악 공부가 아닌 상업을 공부해서 은행가가 되길 바랬습니다. 하지만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음악을 포기할 수 없어, 몰래 음악을 배웠다고 합니다.

 



 


아들의 몸에 깃든 음악을 쫓아내겠다며 채찍으로 후려칠정도로 음악을 배우는 것을 싫어했던 아버지 밑에서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던 요한 스트라우스 2세. 하지만 아버지와는 반대로 어머니는 아들이 음악 공부하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우여 곡절이 많지만,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자신의 악단을 만들게 되고, 빈의 음악계에 데뷔하게 됩니다.
악단을 이끌기 시작하니, 아버지와 졸지에 경쟁관계가 됩니다.

그들의 경쟁관계는 아버지가 5년 후 성홍열에 걸려서 사망하는 바람에 끝나게 됩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악단을 인수하여 자신의 악단과 합쳐서 음악을 계속하게 됩니다. 그 후 아버지의 명정을 뛰어넘어 해외 공연까지 다닐 정도로 인기인이 됩니다.

요한 스트라우스의 명성이 최고조로 높이 있었던 1860년 대, [아답고 푸른 도나우]가 작곡되었습니다.
1866년에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과 전쟁을 했는데, 불과 7주 만에 패하고 맙니다. 그 패전의 결과, 독일 연방 의장국이었던 오스트리아는 독일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한때 전 유럽을 호령하던 오스트리아로서는 충격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패전의 우울함을 달래고자, 빈의 남성합창단에서는 쾌활하면서도 애국적인 곡을 공연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대스타였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게 작곡을 의뢰하게 됩니다. 요한 슈트라우스도 동의를 하게 되고 오스트리아의 젖줄 도나우강을 노래한 시인(Jarl Beck)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란 곡을 작곡하기로 합니다.

합창단에서 의뢰한 곡이었으므로 가사는 빈의 남성합창단의 시인(Joseph Weyl)이 곡에 맞추어 쓰다보니 남성 합창이 들어간 왈츠곡이 된 셈입니다. 초연의 결과는 좋지 않았고,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 슈트라우스는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때 합창을 빼고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해서 연주했습니다. 파리 바람회의 연주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고, 그 후론 오케스트라 버전 쪽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연주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빈의 모든 것은 사라졌지만, 남아 있는 것이라곤 변함 없이 흐르는 도나우 강 뿐이었습니다.
패전의 아픔을 달래고자 작곡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유명한 빈 신년 음악회에서도 전통적으로 앙코르로 이 곡이 연주될 정도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 오스트리아를 상징하는 곡이 되었답니다. ^^

Posted by 울산누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