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의지와 도전 - 정주영 회장의 리더십을 재조명한다. 


일제강점기인 서기 2015년 11월 25일, 지금은 휴전선 이북이라 갈 수 없는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빈농의 아들로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아이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서울로 가출을 하게 되지요.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말 그대로 "맨손 하나"로 살아낸 아이는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었습니다. 

 


 바로 아산 정주영의 일입니다.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집안, 배운 것이 없었지만 "나는 경험에서 배웠다."라고 말하는 당당함.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를 암울했던 일제강점기로 보냈고, 전 국토가 폐허가 되었던 한국전쟁에도 그는 결코 희망을 놓치 않았습니다. 타고난 도전정신과 낙천적인 성격으로 그는 창업 1세대 성공한 기업인이 되었습니다. 

 

 


 2015년 올해는 아산 정주영 회장님이 탄생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금 울산박물관에서는 "정주영회장 탄생 100주년 - 불굴의 의지와 도전"이라는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지요. 지금 대한민국 경제는 위기라고 합니다. 한국 수출을 이끌었던 제조업 자체가 후발주자의 도전과 세계적인 불경기로 위기를 맞고 있지요. 정주영 회장의 리더십이 주목받는 이유입니다. 

 


 고향에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청년 정주영에게 서울살이는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시작한 일은 막노동이었지요. 인천 부둣가에서 짐을 나르고, 안암동 고려대 본관에서 돌을 날랐습니다. 쌀가게에 취직해서 타고난 성실성으로 주인을 감탄하게 만든 이야기는 유명하지요. 주인에게 쌀가게를 넘겨받아 차린 "경일상회"는 이후 거대그룹 "현대"의 출발점이 됩니다.   

 


 

 대한민국이 한국전쟁의 참화를 딛고 본격적인 고도성장을 이룩한 시기, 그곳에서는 현대와 정주영이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기술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경부고속도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을 강요한 일본기술진을 설득하며 건설한 소양강댐, 대한민국을 부도위기에서 구했다고 평가받는 주베일 산업항 건설이 그것입니다. 자동차, 철강, 조선, 건설, 모두 불가능하다 여겼던 도전을 성공하게 만든 것은 정주영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자동차의 효시이자 지금도 명차로 회자되는 포니는 바로 정주영 도전정신의 상징입니다.

미국 포드 자동차 하청으로 일부 모델을 조립생산하던 것이 당시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전부였습니다. 최초의 고유모델 자동차를 만들어서 독자적인 자동차 공업을 시작한다는 야심찬 계획은 박수와 격려보다는 의문과 비아냥을 받았었지요. 정주영 회장의 도전정치는 경제에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소를 판 돈을 들고 가출을 했던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 북한에 소를 보낸 일은 전세계 외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울산의 곳곳에서 아산 정주영의 흔적을 찾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남북분단으로 인해 더이상 고향인 강원도 통천군에 갈 수 없게 된 후, 정주영 회장은 인터뷰에서 울산을 제 2의 고향으로 여긴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 말이 단순한 빈말이 아닌 것이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모두 정주영 회장 생전에 일군 도전의 흔적이지요. 

 


 

 가진 것 없었지만 타고난 성실성으로 한국 최고의 부자가 된 후에도 "나는 가진 것이 많은 노동자일 뿐"이라며 평생 현장을 떠나지 않았던 정주영 회장의 일생은 지금도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아산병원과 울산대학교 역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좋은 예시가 되어 있지요. 위기의 한국경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정주영 리더십이 필요한 때입니다. 

 



정주영 회장 탄생 100주면 - 불굴의 의지와 도전 전시회는 2016년 2월 14일까지 울산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립니다. 

 

 


Posted by Tel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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