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귀신고래 세상에 그 이름을 알리다. 


 1912년의 장생포는 한적한 시골마을이였습니다. 최신식 접안시설이 있는 항구에 각종 선박들이 물자와 사람을 실어나르고 있는 지금의 울산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지요. 그때는 고래잡이가 금지되지 않아, 장생포 항구는 고래를 잡는 포경선과 선원으로 북적거렸다는 것도 지금과의 차이점이지요. 고래가 항구로 들어오는 날이면 마을 전체가 잔치 분위기였던 그때 이곳에는 벽안의 외국인 한명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로이 채프만 앤드류스입니다. 1884년 태어나 1960년 눈을 감은 이 미국인은 생전에 많은 곳을 탐험하고 모험을 즐긴 것으로 명성을 높였습니다. 1912년, 28세의 야싱만만한 그가 이곳 울산 장생포항을 찾은 것도 모험을 위해서였지요. 그는 이곳에서 동해안에 나타나는 영물인 귀신고래를 연구합니다. 경험 많은 고래잡이가 많았던 이곳 장생포는 고래연구를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장소였습니다. 

 

 


 로이 채프만 앤드류스가 귀신고래에 관심을 가진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아서입니다. 영어권에서 귀신고래는 회색 몸빛깔로 인해 회색고래(Gray Whale)라고 불리는데, 고래잡이 사이에서는 악마의 고래(Devil Whale)라고도 불립니다. 이는 고래잡이들이 새끼를 데리고 있는 어미 귀신고래를 사냥하려 했을 때 보인 반응 때문입니다. 새끼를 잃지 않으려는 어미로서는 당연한 일이였겠지요.  

 


다년간에 걸친 로이 채프만 앤드류스의 연구는 1914년 논문으로 완성됩니다. 이 논문에서 로이 채프만 앤드류스는 동해안의 귀신고래를 한국귀신고래(Korean stock of gray whales)로 명명합니다. 멀리 오호츠크 해와 울산 앞바다 동해를 오고가는 귀신고래 무리를 연구한 결과를 한 편의 논문으로 학계에 보고한 것입니다. 

 


 모험가 로이채프만 앤드류스의 동상은 장생포 고래박물관 옆에 서 있습니다. 이는 1912년 모험가 로이채프만 앤드류스와 장생포의 인연을 기념하기 위함이고 또한 한국귀신고래(Korean stock of gray whales)를 세상에 알린 업적을 기리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고비사막에서 공룡의 화석을 연구하고, 때로는 극동의 바다에서 고래를 연구한 이 탐험가를 모델로 후일 영화가 만들어지게 되지요. 바로 많은 영화팬을 거느린 시리즈 "인디아나 존스"입니다. 1960년 눈을 감은 이 탐험가의 모험은 필름 속에서 계속된 셈이지요. 

 


아쉽게도 울산 장생포 앞바다의 귀신고래는 그 수가 점점 줄어 들었습니다. 지나친 남획이 그 원인이였죠. 울산 장생포 앞바다가 천연기념물 126호로 지정된 것이 1962년의 일입니다. 이런 보호 조치가 뒤늦은 것이었는지 귀신고래는 1977년 보고 이후 대한민국 바다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희망적인 소식도 있습니다. 멀리 사할린 바다에서 귀신고래가 발견되었지요. 언젠가는 다시 귀신고래가 이곳 장생포 앞바다를 찾을 그날을 기대해 봅니다. 모험가 로이 채프만 앤드류스를 극동의 낯선 항구도시로 오게 만든 매력적인 귀신고래의 모습이 다시 장생포 앞바다에서 목격되는 그날을 말이지요. ^^

 


 


 

 


Posted by Tel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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