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기자]떠난지 36주기, 문학인 오영수를 돌아보다
즐기 GO/문화예술2015. 5. 20. 09:00

 


 "아낙네들은 해순이를 앞세우고 후리막으로 달려갔다. 맨발에 식은 모래가 해순이는 오장육부에 간지럽도록 시원했다. 달음산 마루에 초아흐레 달이 걸렸다. 달그림자를 따라 멸치떼가 들었다."


난계 오영수 소설 갯마을 중 


 오늘 글은 난계 오영수 선생님의 대표작인 소설 "갯마을" 중 한 구절을 인용하며 시작했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아낙네들은 깨끗한 백사장을 맨발로 달립니다. 적당히 식은 모래는 발바닥을 간지럽히지요. 따뜻해야 보통인 모래가 시원하다는 것은 밤이기에 그러합니다. 


▲ 소설 갯마을의 모습을 묘사한 미니어쳐


 달은 물때를 결정합니다. 지금도 어촌마을에서는 양력과 음력이 함께 표기된 달력을 쓰는 것은 이러한 이유입니다. "달그림자에따라 멸치떼가 들었다."는 묘사는 이를 말함이지요. 어촌 마을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멸치떼가 들어오는 계절감을 작가 오영수는 작가만의 관찰력과 시에 가까운 언어로 묘사해냈습니다. 



 난계 오영수 선생님은 1914년 2월 11일 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 언양읍에서 태어났습니다. 때는 일제강점기였고, 조선어학회 사건에서 보듯 일제는 한글로 된 글을 쓰고 읽는 것을 탄압했던 때입니다. 이른바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이였지요. 난계 오영수의 문학은 그래서 더욱 빛이 납니다. 그분이 묘사한 생생한 우리 말은 언어에 대한 감수성이 가장 민감한 10대와 20대를 일제강점기에 보내야 했던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습니다.


 


 난계 오영수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민초들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작가 특유의 섬세한 관찰력으로 태어나고 자라났던 당시 울산의 민초들의 모습을 날것 그대로 그의 작품 속에 담아내었기에 가능하다는 평가입니다. 



 울산에서 태어나 울산에서 잠든,,, 오영수란 작가는 울산의 작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난계 오영수 선생님, 혹은 문학가로서 난계 선생님의 작품세계 어느 쪽을 이야기해도 고향과 어린 시절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문학가의 작품은 그 글을 쓴 작가를 반영하기 마련입니다. 어린 시절 오영수가 보낸 삶은 고스란히 그분의 문학에 투영 되었습니다. 



 지난 15일에 울산 언양에서는 특별한 추모제가 있었습니다. 난계 오영수 선생님의 36주기 행사였지요. 이 자리에서는 문학가 오영수의 모습에 가려진 "인간 오영수", "스승 오영수"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문학에 재능이 있는 제자의 습작을 칭찬하여 매일 글 쓰는 습관을 들이도록 한 일화는 스승으로서 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일화였습니다. 


▲ 민중판화가 오윤의 작품 


 또한 미술교사로서 틈을 내어 사군자를 그리던 그분의 습관은 아들이자 민중판화가인 오윤으로 이어집니다. 그분의 아드님인 판화가 오윤 역시 민화나 풍속화 같은 전통예술의 형식을 빌어 민초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작품으로 유명하지요. 그 아버지가 문학에서 이룬 경지를 미술로 옮겨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79년 5월 15일, 작가 오영수는 사망합니다. 그러나 그의 문학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그 생명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문학의 본질은 인간이며, 누구보다도 인간을 따뜻한 마음으로 묘사한 작가가 오영수이기 때문이지요. 시간이 나신다면 울산 언양 화장산 자락에 있는 그 분의 묘를 참배하는 것은 어떨까요? 민초의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묘사한 그 분의 소설을 읽는 것 또한 작가 오영수를 추모하는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