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23일 울산시 북구 매곡천변에서 행해지는 의병추모제와 문화제.

 임진왜란 당시 최전방으로 최고 치열한 전투를 벌인 격전지로서 울산시민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적 사실을 너무 모르는 것 같은 안타까움에 이렇게 소개 하고자 합니다.

 

 

<의병 추모제와 문화행사 일반 이모저모>

운영본부 내외빈 접수와 선물증정

 

식전행사 풍물놀이

 

 

식전행사 진혼무

 

 

의병문화제 개회 선언

 

 

53사단 조포발사

 

 

기박산성 의병문화제는 식전행사로 풍물공연과 진혼무, 기박산성 시낭송과 신흥사 주지스님의 독경이 있었고 이어진 추모제는 북구청장의 초헌관으로 북구의회 의장이 아헌관 그리고 의병의 후손인 학성이씨 이채관씨가 종헌관으로 약1,000명의 북구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엄숙히 거행되었다.

 

 

 

 

 

 

뿐만 아니라 식후 행사로는 약수초등학교의 오케스트라 및 독도 플렛시몹, 색소폰연주회와 초청가수의 노래, 영화 명량관람으로 420여 년 전 의병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며 북구 주민들의 화합과 즐거운 한마당으로 승화되었다.

 

오늘 의병문화제의 의의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전국최초의 의령군 의병 곽재우 장군 보다 먼저 결집된 울산의 의병활동에 대해선 잘 아는 사람이 없으며 더구나 울산사람들 조차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번 기회를 계기로 울산 사람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시길 바라며 또한 장기적으로 이 행사가 성대하게 발전하여 울산광역시 차원의 의병문화제가 되었음 하는 바램입니다.

 

<기박산성 의병동기 및 창의>

조선시대는 선비들이 교류 목적으로 자연산수가 뛰어 난 곳을 찾아다니며 시회(詩會) ”라는 이름으로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겨하여 왔고 대개는 지역의 뜻 맞는 선비들을 주축으로 이어졌고 멀리는 인접 고을의 선비들도 초청되어 함께 즐겼던 양반층의 놀이 문화였다.

 

물론 울산도 예외 없이 태화강주변과 태화루, 언양의 작괘천, 무룡산(무리룡산) , 장생포, 회야강등 많은 곳에서 시회를 하였으나 특히 임진왜란 1년전 1591(선조24) 33일 무룡산 시회를 주목하고 연구 할 가치가 있다.

 

당시 울산에서는 박봉수, 윤홍명, 이우춘, 이봉춘, 박문, 장희춘, 서인충, 심환, 이한남, 이겸수, 김응방, 박진남, 류백춘, 전응춘, 이규환, 김흡, 이경연, 이경침이 참여하고 밀양에서 손기양, 이몽란, 청도의 박형, 이철등이 모여 남쪽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매우 염려되는 바이니 우리 모두 마음을 모아 나라가 위난 할 때 목숨 바치고자 하늘에 맹세한다라고 결의를 다졌다.

 

마침 1592413일 임진왜란 발발 불과 20일 만에 왜군이 한양에 무혈 입성하는 이런 초유의 일을 당하고 왜적 제2군 가토기요마사가 19일 부산포로 상륙 20일 울산 병영성이 점령당하는 형국에 울산의 선비들은 이미 1년 전의 회맹에 따라 마을의 장정들을 인솔하여 421일에 기박산성에 집결하였고 이후 결사항전을 대비 장단(將壇)을 결성하고 군오를 정비하여 23일에는 결사항전의 맹세를 하며 천지신에 제를 올려 창의하였다.

 

<기박산성 의병활동조직 및 주요활동실적>

의병의 조직은 의병장 대장 박봉수, 좌익장 박응정, 우익장 장희춘, 좌위장 고처겸, 우위장 이봉춘, 찬획 심환, 종사관 이한남, 운량호군 이경연, 좌재군 박진남, 우재군 김응방 이었고 5월에는 경주의 견천지와 신흥사 승군 지운스님이 합류하여 의병들의 수가 무려 1,000명이 되었으며 이후 9월에는 울산군 가군수 김태허를 중심으로 의병이 통합 편승하니 의병수가 무려 3,000명이 되었다.

 

첫 전투 57일 병영성 기습 공격을 시작으로 경주, 영천, 밀양, 창녕 화왕산, 안동까지 전투에 참여하였으며 임진왜란 최후의 도산성전투(울산전투)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우고 159811월 왜군이 철수할 때까지 무려 1121전의 큰 공을 세웠다.

 

<임진왜란이후 조정의 평가와 그 의의>

선조실록에는 울산사람들만 싸운다라고 기록될 만큼 임진왜란시 최전방으로 울산사람들의 우국충정과 희생이 높이 평가되어 울산군에서 도호부로의 승격과 논공행상으로 선무원종공신에 오른 이가 165명이나 되었으며 울산 의사들의 분전함이 나라에 제일이라 하였다.

 

또한 명의 제독 마귀는 임란 7년 전공이 가장 큰 울산 의병장들과 서생 왜성에서 잔치를 벌여 공로를 위로하고 참석한 의병장을 기록관리 하고 울산 의사들이 임란초기에 창의하여 1121전의 빛나는 공을 기록한 창표당안의 글을 짖고 창표당이란 사당을 세워 영원히 추모하고 빛나게 했다.

 

<여러분 의병의 날을 아십니까?>

국가에서는 2011년부터 매년 61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여 임진왜란 당시 희생된 의병들의 뜻을 기리고 있습니다, 특히 61일로 지정된 것은 전국 최초로 창의된 의령군 곽재우 장군의 창의 일이 음력 422일이기에 당시의 음력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나온 날짜입니다, 꼭 기억 하시길요.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