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것들은 주목을 받기 마련입니다. 언양성당도 그러합니다.

 화장산 자락에 위치한 기품이 넘치는 이 건물은 울산 최초의 석조건물이란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부를 보면 고풍스런 종탑, 둥근 창, 아치로 된 출입구가 보입니다. 내부로 들어가면 경건함이 묻어나오는 창으로 햇빛이 쏟아지지요. 언양성당은 울산 최초의 석조건물로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언양성당이 지어진 시기는 1936년입니다. 단단한 외관이 말해주듯 이 성당은 돌로 만든 것입니다. 울산 최초의 "석조건물"이란 기록을 가진 이유이지요. 그전까지 건축에서 주춧돌이나 기단 등에 돌을 썼지만 전체를 돌로 만든 건물은 이것이 최초입니다. 언양읍성 같은 경우 대부분 돌로 된 구조물이나 각 성문을 지키는 망루는 목조로 만들었지요. 이것 때문에 언양성당은 역사적으로 의미를 가집니다. 

 



 또한 이 건물은 서양의 고딕양식이 한국으로 수용되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림으로 비교하면 이렇습니다. 중국의 문인화가 한국으로 건너와 진경산수화로 발전합니다. 이는 외국의 것을 수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정신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고딕"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외국의 건축양식이 우리 땅에서 구현될 때,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변형되고 발전되어 수용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언양성당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런 건축적 측면 뿐 아니라 천주교에서 언양성당은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아직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았던 조선시대, 천주교를 믿는다는 것은 생명을 걸어야 했던 일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순교했지요. 울산 언양은 이런 천주교 박해에서 자신의 신앙을 위해 생명을 버렸던 이들이 많았던 지역이기도 합니다. 옛 순교자들의 발자취는 지금 천주교 신자들이 성지라 부르며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런 언양이기에 1927년 5월에 독립된 언양 성당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천주교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비유를 들면 울산시가 직할시로 승격한 것에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언양성당이 건축된 것은 한 외국인 신부의 노력이 크게 작용합니다.  파리외방선교회 소속의 보드뱅 에밀 신부가 언양으로 부임하여 성당을 건축하기 위한 모금운동을 벌입니다. 보드뱅 에밀 신부가 직접 설계를 맡았고, 명동성당을 지었던 기술자를 서울에서 모셔올 정도로 정성을 들였다고 전합니다. 




 1936년 10월 25일 마침내 언양성당은 완공되었습니다. 80년의 세월이 흘러 성당이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니 언양의 신자들과 보드뱅 에밀 신부가 흘린 땀은 헛되지 않은 셈입니다. 울산의 보물인 이 성당을 둘러보는 데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 성당은 교인들의 기도하는 곳입니다. 그들의 선배들이 생경을 걸고 지켰던 신앙을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언양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라틴어로 평화를 뜻하는 팍스(PAX)가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고 있는 평화는 누군가가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바랬던 그것입니다. 언양성당을 돌아보며 평화의 의미를 다시 가슴에 새겨봅니다. 

 

 

 



 

 

 


Posted by Tel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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