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과 고래의 인연을 따지자면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세계 최초의 고래사냥 기록이 울산에 남아 있습니다. 아직 문명이 발달하기 전, 울산에 살았던 조상들은 조악한 배와 작살 등의 도구로 고래를 사냥했습니다. 그 중 한 예술가가 바위절벽에 그림으로 새겨 놓았고, 이것이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반구대 암각화입니다.  



 한국에서 실시된 최초의 근대적 포경은 1883년에 실시됩니다.

 고래를 잡아서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자는 주장을 한 것은 갑신정변으로 유명한 김옥균입니다. 1882년 일본에 수신사로 갔던 김옥균은 일본에서 여러가지 문물을 보게 됩니다. 일본 큐슈의 항구도시인 나가사키에서 포경 산업을 보고 한국에 돌아와 이를 당시 임금인 고종에게 의견을 올립니다. 1883년 김옥균은 고종으로부터 동남제도개척 겸 포경사로 임명받아 울릉도 개척 겸 포경 산업 전반을 관할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무역선이 오고 가는 바다지만, 옛날 울산 장생포 항은 고래를 잡는 것으로 마을 전체가 생계를 유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장생포 앞은 고래를 잡는 포경선으로 북적였습니다. 고래를 잡아서 끌고 오는 날이면 마을 전체가 떠들썩했습니다. 고래 한 마리가 가져다주는 경제효과는 그만큼 컸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야구 팀이 있는 초등학교는 소수였습니다. 이는 여러가지 야구장비를 갖추려면 비용이 꽤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장생포 초등학교에는 고래가 가져다 준 부로 초등학교 야구팀을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군수 보다는 포수"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기초자치단체장인 군수는 대한민국의 행정 구역인 군(郡)의 행정을 담당하는 자리입니다. 포수는 지금은 없어진 포경선의 포수를 말합니다. 옛날에는 작살을 쏘던 것이 기계가 발전하여 포로 작살을 쏘는 것이지요. 고래를 잡는 것은 포수이기에 대접이 좋았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보상이 있었기에 군수를 하는 것보다 포수를 하는 것이 좋다. 란 의미로 "군수 보다는 포수"란 말이 장생포에 생겼습니다. 




 안타깝게도 고래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는 앞서 말씀드린 포경 탓이기도 합니다. 존재 자체를 당연하게 여겼던 고래도 무분별한 포경으로 점점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지금 장생포에서 볼 수 있는 고래고기는 바다에서 고래를 해양경찰이 확인한 후 경매를 거쳐 판매되고 있습니다. 고래고기를 둘러싼 논쟁은 이런 환경 탓입니다. 남획으로 점점 줄어든 고래, 귀신고래가 새끼를 낳기 위해 찾았던 울산의 앞바다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습니다. 그 바다에 다시 귀신고래가 뛰어노는 장면을 꿈꿔 봅니다. ^^

 

 




 

Posted by Tel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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