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주 즐기고 있는 소고기는 100년 전 조선시대만 해도 쉽게 접하기가 어려운 음식이었습니다. 경제력인 이유말고도 국가가 정책적으로 소를 도살하는 것을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에 소가 부족했던 것은 아닙니다. 조선의 근본은 농업이였기에 논과 밭을 가는데 쓰였던 일소를 정책적으로 보호를 했던 것입니다.  




 일소 보호정책, 혹은 소 도살 금지령이 어느 정도였냐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최고의 대기근으로 지금도 회자되는 "경신대기근" 때의 일이지요. 적게는 수십만에서 많게는 백만의 사람이 굶어 죽은 비극이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농사를 위해서 그동안 소의 도축을 금지했지만, 사람이 죽은 후에 소가 무슨 소용이냐는 의견이 대세여서 일시적으로 도축 금지령을 폐하고 소고기를 먹는 것을 허용했다고 하네요. 




 조선시대에도 소고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분명 있었고, 관의 소 도축령을 피해가기 위해 일종의 "꼼수"를 썼습니다. 일소를 잡는 것을 금지한 것이니, 죽은 소나 다리가 부러져 노동력을 잃은 소는 주인 맘이었습니다. 이게 소를 잡은 후, "다리가 부러져 버리기 아까워 소를 잡았습니다."라고 보고를 한 것이지요. 




 소고기 요리하면 "언양 불고기"가 연상될 정도로 울산의 소고기는 유명합니다.

 이는 옛부터 논과 밭에서 일할 소가 필요했기에 소를 키웠고, 이에 따라 소를 사고 파는 우시장 또한 발달했습니다. 소를 많이 키우는 곳이니 소를 잡아 소고기를 먹을 기회 또한 많아지게 되었으니, 맛있는 소고기 요리 또한 자연스럽게 발전하게 된 것이지요. 1970년 경부고속도로의 건설 이후, 언양불고기는 전국으로 퍼지게 됩니다. 이곳에서 고속도로 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언양불고기를 먹고 입소문이 전국으로 퍼진 것이지요. 




 육회나 육회비빔밥처럼 신선한 고기의 맛을 즐기는 것 또한 울산 소고기 요리의 특징입니다. 이는 산지가 가깝고 소고기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 발달한 요리입니다. 그때그때 잡아서 냉장하기 전에 바로 즐길 수 있기에 가능한 것이지요. 물고기로 비유하면 냉장기술의 발달 전에는 잡아서 바로 조리할 수 있는 바닷가에서 회를 즐기는 사람이 많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구이부터 언양 떡발기, 육회와 육회비빔밥,,, 소고기 요리의 발달을 간략하게 돌아봤습니다. 음식 또한 문화입니다. 울산에서 하나의 음식이 만들어지고, 그 음식을 시민들이 즐기기까지는 또 다른 음식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몰라도 음식은 맛이 있지만, 음식의 역사를 이야기로 나누는 것 또한 나쁠 것 없지요. 가족과 함께 소고기 어떠신가요? 

 

 



Posted by Tel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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