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이 낳은 투사, 대한광복회 총사령관 박상진


鴨江秋日送君行(압강추일송군행)  가을 깃든 압록강 넘어 그대를 보내매

快許丹心誓約明(쾌허단심서약명)  쾌히 내린 그대 단심이 우리들 서약 밝게 해주네

匣裏龍泉光射斗(갑리용천광사두)  칼집 속의 용천검이 홀연히 빛 발할지니

立功指日凱歌聲(입공지일개가성)  이른 시일 내 공 세워 개선가 불러보세


 사나이의 기백이 느껴지는 이 한시는 고헌 박상진 의사가 백야 김좌진 장군과 이별하며 지은 송별시입니다. 청산리 전투로 이름이 높은 백야 김좌진 장군을 아는 이는 많습니다. 그러나 백야 김좌진과 평생에 걸친 동지였으며 광복회 사령을 맡아 지원한 고헌 박상진 의사를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 학성공원에 있는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의사 추모비 



 ▲ 박상진 의사 생가로 가는 길은 박상진 의사의 이름을 따 박상진길이 되었다. 


 박상진 의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대한광복회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았긴 일제강점기, 그 치욕의 시대에 나라를 다시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박상진 의사가 사령으로 활동하던 대한광복회입니다. 1915년 수립된 대한광복회의 독립을 위한 투쟁 전략은 구체적이며 치밀했습니다. 첫째, 국내에서 군자금을 조달한다. 둘째, 모인 군자금을 바탕으로 만주에 독립군기지를 구축하고 군대를 양성한다. 셋째, 국내 각지에 거점을 만들어 일제가 위기에 빠졌을 때 일시에 봉기하여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전략입니다.




 지금봐도 무척이나 담대하고도 치밀한 전략입니다. 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오랜 동안, 조선과 만주에 각기 거점을 만들어 힘을 길러야 합니다. 또한 일제가 휘청이는 기회가 왔을 때, 한번에 봉기해야하기에 조선과 만주의 연계가 확실해야 가능한 전략이기도 합니다. 만주에 가서 군관학교를 만들어 군대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조선에 남아 일제의 감시를 피해 군자금을 만들어 조달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누가 조선에 남고, 누가 만주로 갈 것인가? 박상진 의사와 김좌진 장군은 밤새 고민했을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조선 광복회 사령이였던 박상진 의사가 조선에 남았고, 백야 김좌진 장군은 만주로 떠나게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한시는 그때 이별을 하며 박상진 의사가 지은 이별시입니다. 평생을 함께 한 동지를 보내며 박상진 의사가 지은 시는 아직도 보는 이의 가슴을 벅차게 합니다. 떠나는 이도, 남은 이도 모두 생명을 기약할 수 없었던, 일제강점기에 독립을 위해 싸운다는 것은 그런 험란한 길이였습니다.  




 박상진 의사가 주도한 대한광복회의 국내활동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요? 당시 일제의 총독인 데라우치 총독의 암살을 시도하였습니다. 또한 무단으로 한국을 점령하고 세금이란 이름으로 불법 징수한 돈을 경주에서 탈취하였습니다. 이는 국내에서 모금된 돈과 함께 만주로 보내어 독립자금으로 쓰였습니다. 또한 당시 우리 땅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투사들을 고발했던 칠곡과 아산의 악질 친일 반역자를 민족의 이름으로 응징하였지요. 




 안타깝게도 이런 활동을 하던 박상진 의사가 잡힌 것은 어머니의 상 때문이였습니다. 1918년 1월 생모의 상을 당하여 상을 치르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으나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일본경찰 수백명이였습니다. 일제는 가혹한 고문으로 박상진 의사를 탄압했으나, 끝내 대한광복회 동지들과 협력자들의 이름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형식적인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박상진 의사는 1921년 8월 11일, 대구 형무소에서 그 생을 마치게 됩니다. 38세의 나이, 조국을 위해 할 일이 많은 아깝고도 원통한 죽음이였습니다. 






 박상진 의사가 사형을 당하기 전 만세삼창을 하고 지은 절명시가 아직 전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보는 이의 가슴을 뛰게 합니다.  


難復生此世上(난부생차세상) 두번 다시 태어나기 어려운 이 세상에

幸得爲男子身(행득위남자신) 다행히 남아 대장부로 태어나는 행운을 얻었건만

無一事成功去(무일사성공거) 이룩한 일(조국광복) 하나도 없이 저승길 나서려니

靑山嘲綠水嚬(청산조녹수빈) 청산은 날 조롱하고 녹수조차 비웃도다.






Posted by Tel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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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nitto 2015.08.08 2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냉방에서 돌아가신 그분의 부인과, 호의호식하던 친일부호 장승원의 아들들 장직상 장택상과 그 자손들이 지도층인양 살아가는 모습이 오버랩되는 2015년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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