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광복절 15일에는 북구 송정동 박상진 의사 생가에서 열린 서거90주기 추모식이 있었습니다. 울산시장님도 참석하여 헌화 및 분향을 하기도 한 행사였는데요.


박상진 의사는 울산 출신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생을 마감한 인물입니다. 현재 울산에는 박상진 의사의 생가가 위치해 있으며, 울산 시민뿐만 아니라 울산을 찾는 관광객에게도 그의 업적과 삶을 보여주기 위해 개방 및 전시되어 있습니다. 울산누리와 함께 박상진 의사의 업적과 생가를 알아볼까요?


 경상남도 울산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영남 지역의 명망 있는 유학자로 의병 운동을 일으켜다가 사형 당한 허위의 문하에서 수학했고, 1910년 양정의숙을 졸업하면서 신학문도 익힌 바 있습니다. 그는 졸업 후 판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판사 임용을 거절하고, 1911년 만주 지역의 망명자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만주에는 허위의 형인 허겸을 비롯하여 이상룡과 김동삼, 손일민, 김대락 등이 망명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영남 지역의 유학자 출신으로 해외 독립 운동 기지 설립을 위해 만주로 건너간 인물들이었습니다. 귀국한 뒤에는 해외의 독립 운동 자금을 지원하고 안둥 삼달양행과 창춘 상원양행, 지린에 연락 거점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대구에 상덕태상회(尙德泰商會)를 설립하였고, 1915년에는 비밀 결사 조선국권회복단을 조직해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계몽 운동가 중심의 이 단체는 곧 채기중 등이 결성한 구 의병 운동가 중심의 풍기광복단과 연합하여 대한광복회를 조직했으며, 박상진은 이 대한광복회의 총사령을 맡았습니다. 
 대한광복회의 강령은 부호에게서 군자금을 반강제적으로 기부 받아 독립 운동 자금으로 사용하고, 만주 지역에서 무장 독립 운동을 위한 학교를 세워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해외에서 무기를 구입하여 일본인 고관이나 한국인 친일 인물들을 수시로 처단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그는 독립 운동 자금을 모집하던 중 협조하지 않는 칠곡의 부호 장승원(장직상과 장택상의 아버지)을 살해하는 등 대한광복회의 여러 테러 활동을 주도한 혐의로 1918년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으며, 체포되어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처형되었습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

 

*구 분 : 문화재자료
*등 록 번 호 :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호
*문 화 재 명 : 박상진의사 생가
*소 재 지 : 울산 북구 박상진길 23 (송정동 355)
*지 정 일 : 1997년 10월 09일



  이 집은 독립운동가 박상진(1884∼1921)의사가 살았던 집입니다. 박상진의사는 1902년 허위(許蔿)선생에게 한학을 배운 후 양정의숙에 진학, 법률과 경제를 전공하고, 판사시험에 합격하여 평양법원에 발령되었으나 사퇴했습니다. 그 후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1915년 조선국권회복단과 대한광복회 결성에 앞장섰습니다. 박상진의사는 만주에서 독립군을 양성하여 무력으로 독립을 달성할 목적으로 대한광복회 총사령을 맡아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1921년 형 집행으로 38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으며,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으로 추서되었죠.

 대지주였던 박상진의사는 모든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하여 집안은 몰락하였고, 이 집도 남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2002년 울산시가 매입하여 2007년 복원 정비 사업을 완료하였습니다. 이 집은 사랑채, 안채 등 모두 6동의 건물로 이루어진 기와집으로, 전체적으로 볼 때'ㅂ'자형 구조를 가진 조선 후기 양반 살림집이입니다.

 

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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