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땅이 비옥해서 농사짓기에 아주 훌륭한 들이 있었어요.

이곳은 이수삼산이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기도 해요. 그 아름다움을 더 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소금가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인 담연이었습니다.

 

 여기가 어디일까요? 이곳은 바로 태화강과 옥동에서 흐르는 여천이 합류되는 지점에 있는 '삼산들'이랍니다. 지금의 삼산동과는 많이 다르지만요.

 삼산동은 지금 고 빌딩이 즐비해 있어 전혀 다른 모습이지요.

그 시절의 풍경은 상상조차 되지 않으시죠?!

 

옛날 이곳에서는 소금을 만들었답니다. 이곳 소금은 질 좋기로 유명했답니다. 그러고 보면 울산은 산과 들, 바다까지 있는 참 풍요로운 고장 아쉬움이 없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질 좋은 삼산 소금은 경주 산내, 건천, 경산, 하양 등 방방곡곡으로 팔려 나갔답니다.

삼산에서 경상북도까지 소금을 팔러 가기 위해서는 운문령이나 고헌산 중턱의 외항재를 넘어야 했어요. 소금을 짊어지고 산을 넘어야 하는 소금장수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여기에 그렇게 두 어깨에 의지해 삶을 꾸려가는 소금장수들이 있었어요. 어려운 일을 함께하는 처지에 서로 돕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세상살이가 그렇지는 않은가봐요. 소금장수 중 선배 격인 나이가 많은 소금장수는 욕심이 아주 많았어요. 그래서 자기는 장사가 잘 되는 지역으로 가고,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후배 소금장수에게는 인가가 드문 지역으로 가게 했죠. 만약 장사가 잘 되면 배가 아프니까 말이에요.

 


이 사실을 모르는 후배 소금장수는 무거운 소금을 지고 묵묵히 길을 나섰지요. 길을 가도 첩첩산중, 인가라고는 보이지 않았어요. 그렇게 어두워질 때까지 소금을 팔러 다녔어요. 물론 소금은 한 그릇도 못 팔았죠. 지쳐 쓰러질 때쯤, 넓은 바위가 보이지 않겠어요. 후배 소금장수는 잠깐 쉬었다 가기로 하고 앉았는데 자기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잠들어 버렸어요. 


  잠시 후 후배 소금장수가 깜짝 놀란 듯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잠도 덜 깬듯한데 봇짐을 다시 짊어지고 길을 나서요. 저런, 조금 더 피곤을 풀고 가도 될 것 같은데 말이에요. 무서운 짐승의 울음소리라도 들은 것일까요. 아니면 나쁜 꿈이라도 꾼 것일까요. 


 길을 다시 떠난 후배 소금장수는 생각에 잠긴 듯 묵묵히 걸었어요. 그러다 문득 목이 말랐나 봐요. 걸음을 멈추고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찾다가 어느 한쪽으로 발걸음을 옮겨요. 바위틈으로 흐르는 시원한 물을 발견했습니다. 소금장수는 기쁘게 그 물줄기에 입을 대어 갈증을 해결했죠.

 


 다시 한 번 입을 대려는 순간 후배 소금장수는 깜짝 놀랐어요.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어려웠죠. 그 곳에는 산삼과 수많은 동삼이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지게를 가득 채울 만큼 많은 삼이었어요. 횡재도 이런 횡재가 있을까요. 후배 소금장수는 무슨 좋은 꿈이라도 꿨나 봐요. 그런데 이 후배 소금장수의 행동이 조금 이상한데요. 큰 산삼을 그대로 놔두고 동삼만 가득 캐고 있어요. 모르긴 몰라도 큰 산삼 한 뿌리가 동삼 수십뿌리보다도 더 큰 가치가 있을텐데요. 거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요. 


 마을로 돌아온 후배 소금장수는 동삼을 내다 팔아 번 돈으로 논을 샀어요. 소금 한 그릇 제대로 팔지 않고도 부자가 되었지요. 이 소문은 선배 소금장수에게도 들어갔어요. 원래 이런 소문은 바람보다 빠른 법이니까요. 배 아픈 사람들이 이야기를 퍼트렸겠죠. 당장 찾아왔어요.

 


“이보게, 어떻게 그렇게 부자가 되었는가?”


  후배 소금장수는 넓은 바위에서 자다가 꾼 꿈 이야기를 해 주었어요.
 그래서 후배 소금장수가 깜짝 놀라 잠에서 깬 거였어요. 후배 소금장수의 말에 의하면 꿈에서 장구소리가 들렸다고 해요. 그 소리에 이끌려 그곳을 찾아가보니 한 노인이 있었어요. 누추한 차림새의 노인이 불쌍한 마음이 들어 소금을 한 줌 주고 돌아서려고 하는데 노인이 말을 했어요.


“여보게. 이 길을 쭉 올라가면 삼이 보일걸세. 큰 산삼은 놔두고 동삼만 가지고 가게.”

 

 후배 소금장수는 꿈에서 본 노인의 말대로 했던 것이지요. 그 말을 들은 선배 소금장수는 그 길로 소금을 가득 짊어지고 길을 나섰어요. 단숨에 후배가 잤다던 넓은 바위에 도착했어요. 이제 잠만 자면 되죠. 어서 꿈에 노인을 만날 결심을 했죠. 잠을 자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정신이 더 맑아지니 선배 소금장수는 미칠 지경이었어요. 어찌하다가 언뜻 잠이 들자 후배 소금장수가 말한 그 노인이 나타났어요.


‘옳지, 이거구나’


 선배 소금장수는 소금을 가마니째 내려놓았답니다.
“이거 다 가지시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노인은 산삼이 있는 장소는 알려주지 않고 소금가마니만 가지고 가네요. 선배 소금장수는 초조해졌어요. 그래서 한 가마니를 더 꺼내놓았어요.
‘소금을 한 줌도 아니고 두 가마니나 내놓았는데 이제 알려주겠지.’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김칫국부터 마신 셈이지요. 선배 소금장수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어요. 두 번째, 세 번째 가마니도 노인이 가져가고 더 내놓을 소금이 없어지자 선배 소금장수는 울먹이며 물었어요. 자기한테는 왜 그러냐고요. 너무한 것 아니고요. 소금 세 가마니를 날로 먹는 도둑놈이라고 까지 했지요.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이지요? 상대의 진심을 마음대로 재단해서는 안된다는 교훈도 들어있고 말이에요.  마음대로 상대방을 판단하는 현대인들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내용이네요.

 

 

 

 

 

 

 

 

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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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종이컵 2014.11.21 1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아요!

  2. 밥은먹고다니냐 2014.11.21 1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 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소금만 버렸네요

  3. BlogIcon 쌈싸먹어 2014.11.21 1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훈적인 이야기네요

  4. BlogIcon 울산사랑 2014.11.24 0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산에서 소금이났다고요? 헐..

  5. 김혜원 2014.12.06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삼산에서 소금이??!! 몰랐던 일이네요...

    • Favicon of https://blog.ulsan.go.kr BlogIcon 울산누리 2014.12.15 2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울산 최대의 염전이었던 삼산염전은 1920~1931년 사이 울산비행장 등이 만들어지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돋질염전은 한국비료(현재의 삼성정밀화학), 대한알루미늄(현재의 노벨리스코리아) 공장에 편입돼 1965년 말께 사라졌으며 명촌염전은 현대자동차가 들어서면서, 마채염전은 공단이 조성되면서 사라졌다고 하네요.
      이 가운데 마채염전과 가까운 소규모 염전 ‘사평 깔분개’ 터에는 지난 1979년 한주(주)가 들어서 국산소금을 생산하면서 큰 돈을 벌기도 했다고 합니다. 울산에서 소금이 생산됐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염포(鹽浦)는 세종 때 간행된 <경상도지리지>에 염포만호가 관영으로 소금으로 생산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후로는 추가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이처럼 울산의 소금이 전국으로 퍼져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소금길’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울산부 소금길, 언양 소금길, 영남알프스 소금길, 해칠방 소금길 등 소금 장수들의 발걸음은 울산에 거미줄 같은 길을 내었다고 합니다. 울산 삼산에 소금이 생겨났다는걸 알게 되니 너무 신기하고 흥미로우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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