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말의 말본을 닦아서 그 이치를 밝히며, 그 법칙을 드러내며, 그 온전한 체계를 세우는 것은, 다만 앞사람의 끼친 업적을 받아 이음이 될 뿐 아니라, 나아가 계계승승할 뒷사람의 영원한 창조활동의 바른 길을 닦음이 되며, 찬란한 문화건설의 터전을 마련함이 되는 것이다." 


외솔 최현배 - 우리말본 머리말 중 



 

울산의 아름다운 건축물#3 - 외솔 최현배 기념관 

 

 "한글은 목숨이다." 외솔 최현배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세종대왕이 나랏말을 기록할 문자를 "훈민정음"이란 이름으로 창제한 이후, 한글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과학적인 원리의 소리글자라 한자에 비해 익히기가 훨씬 쉬워서 조선시대 교육의 기회가 없었던 여성 분과 신분이 낮은 이들에게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시면서 밝힌 뜻 "내 이를 위하여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 여덟 자를 만드노니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쓰기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에 부합하는 일이였습니다. 



  이런 한글이 안타깝게도 소멸될지도 모르는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일제시대의 일입니다. 민족의 문화를 멸하기 위해 온갖 짓을 했던 일제는 우리말과 글에 대한 박해 역시 무척이나 가혹했습니다. 당시의 초등학교인 황국신민학교에 한글을 정규교육에서 없앴을 뿐 아니라, 어린 학생들이 서로 한국어로 의사소통하면 일본인 교사는 학생들을 때리기도 하였습니다.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어린 학생들에게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없애고 일본 문화를 주입시켜 한국을 영원할 일제의 식민지로 삼으려는 시도였습니다. 외솔 선생님이 "한글이 목숨"이라 하셨던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글과 말을 지키려는 학자들의 노력 또한 일제에 의해 탄압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조선 어학회 사건"입니다. 관련 인사들은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6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한글을 연구하고 보급하려는 학술적인 목적의 단체에 이런 가혹한 징역을 선고했으니, 일제의 민족문화 탄압은 이와 같았습니다. 





▲ 한국어 사전부터 한글 타자기까지 외솔 최현배 선생님의 한글 연구는 다방면에 걸쳐 있습니다. 한글타자기는 우리가 쓰고 있는 2벌식 한글 키보드의 전신이 되었지요. 


 이런 조선어학회의 활동의 중심에는 외솔 최현배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지금의 울산광역시 중구 병영동에 있는 외솔 최현배 기념관은 이를 기념하기 위한 곳입니다. 외솔선생님은 한글학회 회장으로 "우리말 큰사전"의 편찬활동을 하셨으며, 오랜 세로 쓰기를 한글 가로 쓰기로 바꾸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키보드로 입력하는 한글 방식도 외솔 선생님의 연구에 기초한 것이니 한글사전에서 디지털까지 선생님이 한글에 남긴 업적은 넓고도 깊습니다. 


 



▲  기념관은 외솔 선생님의 생가터에 서 있습니다. 2층에 있는 생가는 옛 자료를 바탕으로 복원된 것입니다. 곁에는 그분의 한글 묘비가 있어, "요람에서 무덤까지" 평생 한글을 위해 몸 바친 그분의 삶을 역력히 볼 수 있습니다. 


  외솔 기념관은 최현배 선생님의 탄생과 삶, 죽음을  모두 돌아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 건물은 외솔 최현배 선생님의 생가터에 지어진 것입니다. 옛 사진에 근거해 복원한 생가를 볼 수 있지요. 그 분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연구를 멈추지 않았던 옛 책상과, 원고 또한 이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1970년 별세했을 때, 건국 이후 최초의 사회장으로 장례가 치뤄졌습니다. 일제의 가혹한 수탈 속에서도 평생 한글을 지키기 위한 선생의 노력이 인정 받은 것이죠. 그때 쓰인 최현배 선생님의 영정 그림과 외솔 선생님의 무덤 앞에 서 있던 한글 묘비 또한 이 곳에 있지요. 



 스스로의 목숨을 걸고 한글을 지켜낸 선비, 외솔 최현배를 기념하는 이 건물 또한 허투루 볼 수 있는 건물은 아닙니다.  앞쪽에 벽을 없애고 마당을 내어 주변에서 쉽게 접근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1층 지붕도 넓게 공연장으로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오르기 쉬운 계단으로 이 둘을 연결하였습니다. 외부나 내부 모두 정갈한 디자인입니다.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는 한글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선비 외솔 최현배 선생님의 기념관다운 모습입니다. 외솔 기념관은 ‘2014 국토·도시디자인대전’에서  국토연구원장상(기관장상)을 수상했습니다. 



 편리하고 알기 쉬운 한글, 지금은 당연한듯 누리는 이 한글을 지키기 위해 선각자들은 가혹한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한글이 목숨"이란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 생명을 걸어야 했던 외솔 최현배 선생님의 삶과 죽음이 있는 "외솔 최현배 기념관", 그분이 태어난 생가와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연구를 놓치 않았던 학술자료들, 마지막 가는 길의 영정까지... 울산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글학자가 된 선비 외솔 선생님의 삶과 죽음, 또한 그분의 한글사랑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Posted by Tel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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