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아름다운 건축물#2 - 울산의 역사를 웅변하는 울산향교


 향교는 조선시대에 설치된 국립교육기관입니다. 서울에 성균관이 있다면 지방에는 향교가 있습니다. 지금으로 본다면 서울대와 지방거점 국립대의 관계에 비교하면 될듯 합니다. 그 연원은 고려시대로 올라가지만, 그 때는 "향학"이라 불리었으며, 본격적으로 지방의 유교가 보급된 것은 국교를 유교로 삼고 향교를 활성화한 조선시대부터 입니다. 

 


 서원은 여러 곳이 있을 수 있지만, 향교는 그 지방에 하나 뿐입니다. 국가에서 설립한 기관이라 그러합니다. 향교의 위상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울산의 예로 든다면, 서원은 구강서원과 석계서원이 있지만, 향교는 중구 교동에 있는 울산향교 뿐입니다. 그렇다면 울산서원의 역사는 언제 시작되었을까요?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다른 역사적 기록에서 추정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여러가지 제도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행정단위로서 도가 나타난 것도 이때이지요. 지금은 경상남도 아래 시가 있고, 시 아래 구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도 아래 부가 있고, 대도호부가 있고, 목이 있고, 도호부가 있고, 군과 현이 있는 체제였습니다. 이때가 조선 태종 13년인 1413년이였고, 울산은 군이 되었고, 언양은 현이 되었습니다. 



 울산향교의 정원은 이로써 추정가능합니다. 처음에 각 향교의 정원은 부와 대도호부, 목 이상의 지방은 각 50명, 도호부 40명, 군은 30명, 현은 15명으로 배당되었습니다. 성종 때 완성된 경국대전을 보면 이를 90명, 70명, 50명, 30명으로 증원되었고, 이 정원은 조선말까지 유지됩니다. 조선 초기 30명으로 출발한 울산향교의 정원은 곧 50명이 됩니다. 



 향교에서 공부하는 학생의 정원은 그러하며 교수진은 어땠을까요? 종 6품 벼슬에 해당하는 교수와 종 9품 벼슬에 해당하는 훈도를 두어 향교의 교육을 담당하게 하였습니다. 다만 군 중 작은 소군에는 훈도만 두어 교육했다고 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정교수인 교수가 있고, 조교인 훈도가 있습니다. 이들이 30명과 50명의 학생들을 지도하며 글 공부를 했다고 하니,  넓은 향교에서 글을 읽는   소리와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학교를 만들고, 학생을 뽑아도 잘 운영되지 못하면 소용이 없지요. 조선은 이 운영을 그 지역을 다스리는 지방관에 맡기고, 그 운영이 잘 되지 않았을때는 책임을 물었습니다. 당연히 잘 운영될 경우에도 지방관에게 고과에 유리하게 반영하여 승진시켰습니다. 책임을 지우고 잘 하면 상을, 못 하면 벌을 주었습니다. 각 지방관이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학문을 장려하도록 한 것이죠. 



 조선 전기와 후기를 가르는 것은 임진왜란입니다. 나라를 뒤흔든 전쟁이였으니 여러가지가 바뀌었지만, 임진왜란으로 인해 울산향교에는 2가지 변화가 생깁니다. 하나는 울산읍성과 태화루가 그러하듯 불에 타 건물이 타버린 것입니다.  울산향교 초기 기록이 사라진 것도 이때입니다. 또 하나는 울산이 도호부로 승격된 것입니다. 1598년 임진왜란, 정유재란 때 울산의 군민들의 공을 치하하는 의미로 이덕형이 건의하여, 울산군은 울산도호부로 승격되어 그 격이 높아졌습니다. 이 때 울산향교의 정원도 50명에서 20명 늘어난 70명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위치로 향교가 옮겨온 것이 효종 2년인 1651년입니다. 숙종 37년에 정문이자, 널리 백성의 삶을 살피는 청원루를 세웠습니다. 지금의 울산향교의 모습이 완성된 것은 숙종 37년인 1711년입니다. 이후 여러가지 개축이 있었으나 작은 규모이고,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중구 교동 일대가 개발되어 청원루에서 선비들이 바라보던 옛날 풍경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울산향교를 통해 울산의 역사를 돌아보았습니다. 아니 울산의 역사 속에서 울산향교의 위치를 찾아보았다고 할까요? 조선이 망한 후, 울산향교에는 더 이상 울산의 곳곳에서 배움을 위해 이곳에 몰려든 선비들의 책 읽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울산향교를 돌아보며 느낀 쓸쓸함은 이 때문이겠지요. 



 글을 읽던 선비의 정신은 길 건너 유림회관을 통해 전승되고 있습니다. 조금은 쓸쓸해 보이는 울산향교가 옛 영화를 찾는 시기가 있습니다.  매년 음력 2월과 8월, 공자를 비롯해 4성, 10철, 18현 등 향교에 모시는 유교의 여러 성인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석전이 그것입니다. 향교를 돌아보면 옛 선비들이 글을 읽던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옛 역사를 그려보는 울산향교 나들이, 어떠신가요?

 

 






Posted by Tel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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