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아름다운 건축물  - 400년만에 다시 돌아온 태화루


누각(樓閣)이란 풍경을 즐기기 위한 집을 말합니다. 부실한 기초 위에 세운 건물이란 뜻으로 금방 무너질 부질없는 짓을 말할 때 쓰는 고사성어 사상누각의 누각이 바로 이 뜻이지요. 정자와 비슷하나 규모가 크고, 그 목적이 즐기기 위함이니 궁궐이나 관아에 딸린 부속건물이 많습니다.

누각에 올라 백성의 고단함을 살피자는 의미로 향교나 서원에서 짓기도 하지요.  성곽에 딸린 누각은 적을 감시하기 위함입니다. 대부분 사방이 두루 보이는 풍경이 좋은 곳에 누각을 짓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조선초기와 후기를 나눌때 기점이 되는 시기는 임진왜란입니다. 조선초기 영남의 삼대 누각을 말하자면 진주의 촉석루와 밀양의 영남루, 그리고 울산의 태화루가 있습니다.

모두가 강을 바라보는 언덕 위에 세워진 누각들입니다.

진주 남강을 바라보는 촉석루, 굽이치는 밀양강을 바라보는 영남루, 태화강을 바라보는 언덕 위에 세워진 태화루, 모두 굽이굽이 돌아가는 강의 경치를 즐기기 위한 누각인 것입니다. 



   ▲ 복원된 태화루 앞에 있는 참봉이공만령 영세불망비 

 - 옛 태화루 곁에 태화강을 가로지르는 울산홍교가 있었음. 이 비석은 그 울산홍교를 세우는데 공이 컸던 참봉 이만령을 기리는 비석 -


아쉽게도 촉석루나 영남루와는 달리 태화루의 명성은 조선 전기로 한정됩니다.

울산읍성이 그러했듯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입으로 소실되어 복구되지 못한 탓이지요. 태화루의 기원을 돌아보면 신라 선덕여왕 때로 넘어갑니다. 이곳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태화사가 있었습니다. 태화루 자체가 태화사에 딸린 누각이였는지? 아니면 태화사 자리에 따로 태화루를 세운 것인지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고려사절요에 고려 성종 16년인 997년 8월에 왕이 동경에 행차했다가, 9월에 흥례부에 행차해 대화루(大和樓)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경은 지금의 경주를 말하며, 흥례부는 고려 태조때 설치된 지방명으로 지금의 울산을 말합니다. 고려 때 흥례부였던 울산이 울산이란 명칭을 얻는 것은 조선 태조 때의 일입니다. 



 

    ▲ 좌) 복원된 태화루는 울산시민의 휴식처로 돌아옴 

       우) 태화루의 상량문의 모습 - 용 서기 2013년 5월 30일 중창 상량 구- 용은 물을 부르니 화재로부터 보호한

        다는 의미, 구는 장수의 상징 거북이를 말하며, 태화루가 오래 가기를 기원하는 의미.


고려 성종이 경주를 거쳐 울산에 왔을 때 태화루에서 큰 연회를 베풀었을 정도이니 옛 태화루가 왕의 행차를 감당할 만한 규모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또한 다른 곳도 아닌 이곳에서 연회를 열었으니 그 옛날 태화루는 울산을 대표하는 누각이였음에 분명합니다.

세월이 흘러 낡아 퇴락한 태화루는 조선초기 태종의 장인이였던 민제가 이곳에 와 경상도 안찰사 안노생에게 중건을 부탁하여 다시 한번 옛 모습을 되찾게 됩니다.



 ▲ 태화루에서 바라다본 조망 - 누각은 경치를 즐기기 위한 건물 


경치가 뛰어난 곳은 시인 묵객이 몰리기 마련이고, 문인들이 몰리면 당연히 그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한 시가 있기 마련입니다.  

조선전기에 영남 삼대 누각으로 이름 떨치던 태화루 역시 예외가 아니었지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의 여섯 임금을 섬겼던 서거정이 경상도 순찰사로 이곳에 들렸을 때 지었던 시가 남아 오늘에 전합니다. 


울산 서쪽 언덕 태화루

거꾸로 선 그림자가 푸른 물에 잠겼네.

처음에는 너무 넓어 학 등을 탔나 했더니

어렴풋이 알겠네, 자라 머리에 올랐음을.

산 빛은 멀리 계림 새벽에 닿았고

바다 기운은 멀리 대마도 가을에 이었네.

만리 타향에서 조망의 흥취 다하지 못했는데

하늘 가득한 비바람에 난간에 기대어 시름젖네.



 



▲ 복원한 태화루, 고려 - 조선전기 때 쓰인 주심포 형식 

 

서거정이 울산에 도착했을 때 다시 태화루는 퇴락해 있었습니다. 당시 울산부사였던 박부경에게 청하여 다시 한번 중창하게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영남삼루 - 촉석루, 영남루, 태화루 중 제일이란 말은 이 때 나온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후 임진왜란 때 태화루는 소실되었고,  다시 중건하기 까지 400년의 세월이 흐른 셈입니다. 


 

400년 전의 건물을 되살리는 복원이니 쉽지 않은 작업이였습니다. 예전 태화루의 규모나 구조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기에, 이름을 나란히 한 촉석루와 영남루를 참고하여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거정이 남긴 "태화루 중수기"의 기록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실 복원이라기 보다는 건립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400년전의 태화루와는 규모와 구조가 다른 모습일지라도, 구비구비 돌아가는 태화강의 풍경과 누각에서 맞는 시원한 바람은 400년전과 다름이 없겠지요.

복원을 위한 노력의 결실일까요?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국토디자인대전"에서 태화루는 역사와 환경부문 국토교통부장관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400년 전 임진왜란 때 잃어버렸던 태화루을 오늘에야 다시 세웠습니다. 울산의 정체성과 역사를 다시 세운 일이기도 하지요.

 가족과 함께 태화루에 올라 굽이굽이 돌아가는 태화강을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을 쐬는 것은 어떠신가요? 조선의 이름난 서거정이 이곳을 찾아 지은 시를 한번 음미해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

 

 



Posted by Tel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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