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구 구남마을 일대에서 조개 화석이 무더기로 발견되었습니다. 6천만 년 전 신생대 때 울산이 바다였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증거인데요. 이와 관련된 울산의 설화가 있어 여러분께 소개할까 합니다.

"아버지, 미역 좀 더 따 갈게요."


 두동면에 사는 처녀가 열심히 미역을 따고 있어요. 

 이상하죠? 산으로 둘러싸인 두동면은 울산에서도 바다와는 제일 먼 서북쪽인데 말이지요. 미역이라면 바다를 끼고 있는 강동면에서 따는 것이 아닌가 싶겠죠. 그런데 말이죠. 두동면에서 미역을 거뒀대요. 믿기 어렵지만 이곳은 바다였죠.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과 울산광역시 두서면의 경계를 이루는 미역내라는 곳이 있어요. 미역을 땄다고 해서 미역내라고 하는 것이지요. 원래 고헌산까지도 바다였는데, 배를 매어놓고 다녔다고 해요. 언제인지 정확히 이야기할 수 없지만요. 지금은 육지이지만 옛날에는 바다 밑이었다는군요.

 용왕님이 사시는 바다가 육지가 되어버렸죠.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이곳이 용궁이었을 가능성도 있어요. 분명한 것은 천지개벽이 이루어졌다는 것이에요.

 

 울산이 바다였던 이야기를 해 볼까요. 강동 정자 앞의 산 이름은 '앵이덤'이에요. 산 이름이 무덤이름처럼 들리느냐고요. 앵이는 '꼭대기'의 울산 방언이에요. 더미의 꼭대기 즉, 산꼭대기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넘쳤다는 것이죠. 지금도 앵이덤에는 조개박힌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나 봐요. 물론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면 말이죠. 

 정자 앞은 바다와 가까우니 물이 들어올 수도 있다고요. 그러면 좀 멀리 가볼까요. 울산을 대표하는 산인 문수산이 바다에 잠겼대요. 해발 599m인 문수산에 물이 가득 들어차서 무 한 뿌리만큼만 보였다죠. 고헌산은 가지산이나 신불산처럼 높은 산은 아니지만 600m에 달하는 산이니 마음을 다잡고 올라가야 하는 높이의 산인데 말이죠. 이뿐만이 아니었어요. 451m의 무룡산은 소 한 마리 누울만큼, 남암산은 낫 모양으로 매밭띵이는 매한마리 앉을 만큼, 갈미봉은 비 올 때 갓 위에 덮어쓰던 고깔의 갈모의 윗부분만큼만 보였어요. 지금은 큰 산들이 그 당시에는 물에 잠겨 겨우 흔적만 남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무룡산 정상 (사진출처/팀블로거 '김청조')

 

 물 때문에 산이 떠내려가기도 했어요. 온양면 덕신 오산마을에는 오산이라는 조그만 산이 있었어요. 원래 이 산은 웅촌에 있었대요. 큰 홍수가 오고 난 뒤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하죠. 산이 물에 잠기거나 떠내려 올 정도면 울산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겠지만 분명 살아남은 사람은 있었어요. 그렇다면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웅촌면 통천리에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사는 부자 이야기입니다. 창고에는 쌀과 곡식이 가득했지요. 부자의 하루는 창고 안의 곡식이 잘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했지요. 잠들기 전에도 창고 확인을 했고요. 매번 가득 차 있는 곡식들을 보고 있으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정도 였어요. 이정도 부자로 살면 행복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죠.

 최근 부자는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었어요.

 창고를 하나 더 늘려야겠다고는 생각이 자꾸만 커져 갔어요. 그런데 곡식이 늘 그대로만 있으니 애가 타들어 갔죠. 분명 방법이 있다고 확신했지만 도무지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찾기 어려웠어요. 어느 날 문득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집에 찾아드는 객식구 때문이라고 생각했죠. 어떻게든 그들을 막아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목탁소리가 들렸어요.

"제기랄"
부자는 숨을 죽였죠. 마침 집안에는 아무도 없으니 자신만 조용히 있으면 쌀 한톨이라도 지킬 수 있다고 확신했어요. 그런데 이 스님도 만만찮았죠. 누가 이기나 내기라도 하듯 말이에요. 한시간, 두시간이 지나도 모각소리가 멈추질 않았죠.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이런 상황이 되니 고집 세기로 유명한 부자가 어떻게든 이겨야겠다 싶었죠.

 그 사이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었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이 팽팽한 기싸움의 승리자가 누가 될지 너무 궁금했죠. 물론 그들은 모두 스님이 이겨주길 바라고 있었어요. 누구 하나 부자에게 마음이 상하지 않은 이가 없었거든요.
 시끌벅적한 대문앞과 달리 집안은 적막하기 이를 데 없었죠. 부자는 이대로 있다가는 자신이 질 것 같았어요. 방문을 열고 나가 바로 외양간으로 갔죠. 그곳에서 소가 조금 전에 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똥을 한 삽 가득 펐어요.
'이 땡중 놈아. 이번에 한번 당해봐.'
 잠시 후 부자는 의기양양하게 스님 앞에 섰어요. 그제야 스님의 목탁소리는 멈췄지요. 부자가 말했어요.
"잘 오셨습니다. 쌀을 만드는 소중한 거름이라도 받으시겠습니까?"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부자는 스님의 탁발보따리에 소똥을 한 가득 넣었지요.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킬킬 웃어대면서 말이지요. 마을 사람들은 당황스러운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죠. 세상에 스님에게 저리도 나쁘게 할 이유가 없지 않나요. 그런데 왠일인지 스님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부자에게 공손히 절을 하고 등을 돌렸죠.

'세상에 이럴 수가!'
스님이 안쓰러운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쏟아냈어요. 소똥 냄새가 진동하는데도 꼼짝하지 않는 스님이 너무나도 측은했죠. 그때 스님이 말했죠.
"뒷산에 용이 나왔다는데 구경 갑시다."

 

 

 동네 사람들은 스님을 선뜻 따라나섰어요. 용 구경이라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겠지요. 스님이 앞장서고 동네사람들은 그 뒤를 따라갔죠. 산에 올라갈 즈음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엄청난 비가 쏟아졌죠. 스님의 분노가 폭발한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에요. 그 덕에 눈 깜짝할 사이에 마을은 물바다가 됐죠. 부자의 으리으리한 기와집도 떠내려가 버렸어요. 사람들이 살던 집도 떠내려갔죠. 당황하는 사람들은 잠시 후 할말을 잃고 말았어요. 부자가 물에 떠내려가고 있었거든요.

"사람 살려."
간절하게 살려달라며 외치던 부자는 목숨처럼 아끼던 곡식과 함께 떠내려갔어요. 잠시 후 자취마저 사라지고 말았어요. 그래도 누구하나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없었죠.
 결국 부자가 욕심을 부려 죽음을 자처한 것입니다. 착하게만 살면 천지가 개벽하고, 바다가 땅이 돼도 살아남을 수 있대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떠세요. 같은 상황이라면 살아남을 자신 있으신가요?

 

 

 

 

 

 

 

 

Posted by 울산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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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우영 2014.07.31 0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스님을 따라갔을거 같네요..울산에도 이런 설화가 있다니 재밌어요~

  2. 정찬용 2014.07.31 1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은 높은 산도 과거에는 다 잠겨 있었다니 먼 훗날 한국 지도가 어떻게 바뀔지 새삼 궁금해집니다.
    욕심만 부리다 행복하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으니 그 부자가 참 불쌍하네요.

  3. 혜광 2014.07.31 17: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잇게 잘읽었습니다. 이런 일화가 있었다니 ^^

  4. 에린양 2014.07.31 18: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쁜놈이지만, 부자가 죽은건 좀 안타깝네요. 오히려 자기 집과 곡식들이 다 쓸려내려가는걸 보고 후회하고 반성했음 좋았을걸...^^

  5. 코코 2014.07.31 18: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신기해요! 학교 다닐때 배웠던 역사나 지리이지만, 이렇게 설화와 함께 고헌산에 대해 들으니 새롭고 신기하게 다가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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