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 울주 언양읍성의 남문 영화루는 복원작업이 완료되어 준공식이 열렸습니다. 울산의 중요한 문화재인 울주 언양읍성을 복원하여 지역주민에게 자긍심을 일깨워준 일이였습니다. 사실 이번 복원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1년이 지난 지금도 영화루 좌,우에는 성벽 복원공사가 한참이며, 기초부터 다시 쌓아야 하는 남쪽 성벽에 비해 그나마 온전히 언양읍성 북쪽도 원래의 위용에는 한참 못 미치기 때문이지요.

 울주 언양읍성은 사적 제153호이며, 고려 공양왕 2년 1390년에 토성으로 처음 만들어졌고 군사적 방어력을 높이기 위하여 조선 연산군 6년(1500년)에 석성으로 새로 지었으며 임진왜란 때 무너진 것을 1617년(광해군 9년)에 새로 쌓았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울주 언양읍성의 둘레가 1,489, 높이가 8척이였다고 하니, 지금의 m단위로 환산하면 둘레가 451m입니다. 정방형으로 가정하면 한 변이 110m에서 120m쯤 되는 성벽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고, 그 높이는 2.42m이였습니다. 지금과는 달리 당시에는 토성이였고, 작은 규모였습니다.

 



 지금의 모습으로 석성이 된 것은 서기 1,500년인 연산군 6년입니다. 당시 언양현감 이담룡에 의해서 증축된 것인데, 규모가 대폭 커져 둘레 3,064, 높이 13척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단위로 환산하면 924m, 높이 3.93m인 셈입니다. 읍성 4방향에 문이 들어서고 그 이름은 아직도 전하고 있습니다. 작년 복원된 남문이 영화루(映花樓), 동문은 망월루(望月樓), 서문은 애일루(愛日樓), 북문은 계건문(啓乾門)입니다. 주문인 남문과 동문, 서문은 각각 누각이 있었습니다.

 

 

 

 산과 언덕을 이용해서 성을 쌓았던 조선에서 평지성인 울주 언양읍성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시 언양이 가진 지리적 중요성을 말해주는 것이지요.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고 부산진성과 동래성을 함락한 왜군이 울주 언양읍성에도 들이닥칩니다. 이곳 또한 전쟁의 격전지가 되었던 것이죠. 이때 깨지고 부서진 울주 언양읍성의 상처가 복원된 것은 전란의 상처를 한참 치유하던 광해군 9, 서기로 따지면 1617년입니다.

 

 

지금의 영화루와 남쪽 성벽 복원공사가 한참인 곳 바로 안쪽에는 언양초등학교가 있습니다. 1911년 개교한 학교니 어언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학교입니다. 이 학교 건립 때에도 울주 언양읍성의 성벽돌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읍성이 가진 역사적 의미를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지요. 언양초등학교의 터는 예전 동헌과 객관이 있었던 자리입니다.

 

 

 

 울주 언양읍성이 심하게 훼손되기 시작한것은 1923년 언양 남천의 보 작업을 하면서 였다고 합니다. 언양성의 남쪽 성벽돌을 주로 가져다 썼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남천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돌을 가져다 쓰다 보니 영화루와 그 주변 성벽이 망가지게 된 것이죠.

 

 

 

 

이것으로 울주 언양읍성의 역사를 간략하게 돌아봤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울주 언양읍성의 복원은 이제 시작인 셈입니다. 석성인 언양읍성을 쌓기 위해 문종 원년인 1451년부터 시작해 연산군 6년인 1500년에 끝났다고 하니, 그 읍성을 원형과 같이 복원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복원될 그날을 다 같이 기다려볼까요!

 

 

 




Posted by Tele.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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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남나연 2014.07.15 1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랑스럽습니다!

  2. 혜광 2014.07.31 14: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KTX역 갈일 있을떄 살짜쿵 들려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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